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아는가?

2005.03.24 12:53

김승천 조회 수:4378

                                                             마태복음 27장 39 - 44절

시를 한편 읽어드리면서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 사랑은 아픔을 위해 존재합니다. "라고 하는 시입니다.

사랑이 그대를 손짓하여 부르거든 따르십시오.
비록 그 길이 어렵고 험하다해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를 품을 때에는 몸을 맡기십시오
비록 사랑의 날개 속에 숨은 아픔이
그대에게 상처를 준다해도
사랑이 그대에게 말하거든 그를 믿으십시오
비록 사랑의 목소리가 그대의 꿈을
모조리 깨뜨려 놓을지라도

왜냐하면 사랑은 그대에게
영광의 관을 씌워주지만 또한
그대를 십자가에 못박는 일도
주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그대의 성숙을 위해 존재하지만
그대를 아프게 하기 위해서도 존재합니다.
사랑은 햇빛에 떨고 있는
그대의 가장 연약한 가지들을 어루만져 주지만
또한 그대의 뿌리들을 흔들어 대기도 한답니다.
- 칼릴 지브란 -

사랑과 아픔은 뗄 수 없는 관계인가 봅니다. 사랑과 아픔이 가장 강하게 소용돌이치는 시간이 바로 고난 주간이 아닐까 합니다. 고난 주일을 큰 슬픔과 비통으로 맞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의 많은 절기 중에서 가장 기쁘고 즐거운 절기가 바로 고난 주간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모든 고난을 담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껏 기뻐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내는 일년 중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는, 그것도 그분의 아프신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때가 고난 주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값없이 주어진 구원을 값싼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얼마나 그 마음이 아프셨는가? 하는 것을 아는 만큼, 우리는 그 사랑, 그 용서, 그 구원에 감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이란 즐겁고 기뻐야 마땅하지만, 때로 진지함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 고난 주일에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좀더 깊이 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성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아십니까?
하나님이 태초에 빛을 지으셨을 때, 보시기에 좋으셨습니다. 하늘을 지으셨을 때도 좋으셨습니다. 식물을 창조하셨을 때도 좋으셨습니다.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을 때도 좋으셨습니다. 생물을 만드셨을 때도 좋으셨습니다. 육축과 짐승을 만드셨을 때도 좋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셨을 심히 좋으셨습니다. 그리고 안식하실 때, 평안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해서 인생의 비극적인 역사가 시작될 때, 하나님 마음의 아픈 역사도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할 때,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에덴에서 쫒아 내셔야 했을 때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그들의 불순종이 그들의 아들 가인을 통해 살인이라는 끔직한 결과를 낳을 때 아프셨습니다. 노아가 살던 시대에 사람들의 범죄함으로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그들을 물로 심판하실 때, 그 물은 하나님의 눈물이었습니다. 소도과 고모라를 불로 멸망시켜야 만 했을 때, 하나님의 마음은 아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로 탄식할 때, 하나님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그곳에서 구원하셨는데 그들이 다시 원망하고 불평할 때,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길을 잃고 방황할 때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선지자를 보내었더니 그들을 핍박하고 죽여서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인생이 슬픔의 역사와 함께 했다면 하나님은 아픔의 역사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범죄해서 마음이 아프시고, 그 인생을 사랑하셔서 징계하실 때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그런 중에도 정말 지독하게 마음 아픈 시간을 하나님이 가지시게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보내고 있는 이 고난주간에 가지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불순종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아픔입니다. 그런 인생들을 그냥 둘 수 없어서 징계할 때도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더 마음 아픈 시간을 맞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의 아들을 외면하셔야 했던 아픔입니다. 마가복음 14장 36에서는 "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 비록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고 있지만, 그 십자가를, 자기의 아들이 마셔야 하는 그 잔을 옮겨 달라고 하는 요구가 분명했습니다. 그때 대답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마음으로 울고 계셨습니다. 마가복음 15장 34절에 "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할 때, 하나님은 아픈 마음으로 아들의 귀에 들리지 않게 하늘에서 통곡하셨습니다.

땀방울이 피 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는 그 기도를 외면하셔야 했을 때, 하나님의 마음은 아프셨습니다. 십자가에서 " 왜 나를 버리시느냐? "고 절규하실 때, 하나님의 마음은 아프셨습니다. 죄 없는 자기의 독생자를 희생양 삼으실 때, 하나님의 마음은 아프셨습니다. 예수의 몸이 십자가에 달려 찢기실 때, 하나님의 마음은 더 처절하게 찢기시면서도 결국 그 아들을 거기서 내리시지 않았습니다.

송명희 씨는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얼마나 아프실까 하나님의 마음은
인간들을 위하여 외아들을 제물로 삼으실 때
얼마나 아프실까 주님의 몸과 마음
사람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제물 되실 때
얼마나 아프실까 하나님 가슴은
독생자 주셨건만 인간들 부족하다 원망할 때
얼마나 아프실까 주님의 심령은
자신을 주셨건만 사람들 부인하며 욕할 때
우리 함께 부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아십니까?
침묵하실 수 없는 순간에 침묵하시며 대신 아픔으로 채우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어 수종들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신 까닭에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그 아픔을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저도 그 분의 아픔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분은 크신 분입니다. 그 마음의 아픔도 제가 헤아릴 수 없이 큰 것입니다.

이제는 많이 건강해지시고 힘을 내셔서 제가 이런 말 할 수 있습니다. 김지순 성도님이 자녀를 잃고 얼마 후에 만났을 때, 거의 정신이나가 있었습니다. 정말 미치지 않고 이겨내신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것은 부모를 일찍 여의는 것과는 또 다른 것입니다. 지금껏 제 생애에 가장 마음 아픈 날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희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신 날도, 제 아내가 세상을 떠난 날도 아닙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지 1주년 되는 주일 아침에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 묘를 갔었습니다. 그 때 아이들이 비석을 바라보면서 눈물이 글썽이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저는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제가 슬픈 것은 참겠는데 애들이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그냥 그렇게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실 때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 마음이...  우리가 보내고 있는 고난 주일은 이런 하나님의 아픈 마음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구속은 이런 하나님의 아픈 마음 가운데 이루어 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도 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픔은 그보다 훨씬 더 커야만 했습니다.

여러분은 성자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아십니까?
빛이 세상에 왔으되 어둠이 깨닫지 못할 때, 주님은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죄인의 친구가 되어주었다고 욕하는 바리새인들을 볼 때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며 선한일 한다고 트집잡는 서기관들을 볼 때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고향의 사람들이 배척할 때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진리를 쫒기보다 이적만 바라는 무리들을 볼 때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멸망할 예루살렘성을 내려다보시며 마음이 아파 우셨습니다.

자기가 죽게된 그 밤에 베드로 야곱 요한이 겟세마네에서 잠잘 때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자기의 제자가 은 30에 자기를 팔 때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그런 와서 그가 입맞출 때 마음이 아팠습니다. 강도에게나 어울리는 검과 망치로 자신을 결박하는 이들을 볼 때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자들이 자신을 버리고 다 도망갈 때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멀찍이 따르던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눈길이 마주쳤을 때 주님은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없는 죄를 만들어 내느라고 혈안이 된 제사장들과 장로들을 볼 때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침 뱉고 조롱하며, 때리고 못박는 무지하고 완악한 인생들을 보실 때 주님의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모욕하며, 하나님의 아들이면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소리지를 때, 성자 하나님은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저가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니 하나님이 저를 구원하는가 기다려 보자고 할 때, 마음이 아프셨습니다.

그러나 정말 주님의 마음이 아픈 것은 하나님의 외면이었습니다. 백성들이 배척할 때, 사랑하는 제자들이 배신하고 떠날 때, 그리고 자신의 제자 중 하나가 겨우 은 30에 자신을 팔았을 때, 물론 마음 아프셨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의 마음이 아픈 것은 하나님의 외면이었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아버지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느냐? 고 하는데도 하나님이 하시지 않는데 주님의 아픈 마음이 있습니다. 못해서 안 하는 것보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아픔입니다. 원수를 갚을 수 있는데 갚지 않는 아픔, 열두영이나 더되는 천사를 당장 보내서 십자가에서 내려와 구원하며, 완악하고 무지한 백성들을 멸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아버지에게 그런 능력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인생을 구원할 수 없고 성경을 이룰 수 없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 하신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아픔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한 아버지께서 억만 죄악이 누르는 영적인 고통과 찢어지는 육체의 고난을 십자가에서 그대로 담당하도록 내버려 주시는 하나님의 외면이 마음 아프셨습니다. 그 아버지의 아프신 마음을 생각하면서 주님의 마음은 더욱 아프셨습니다. 우리의 구속은 이처럼 주님의 아프신 마음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의 용서는 너무도 컸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그분의 아픔  더욱더 커야만 했습니다.

여러분 성령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아십니까?
성령님은 아버지가 마음이 아플 때도, 아들의 마음이 아플 때도 아파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보시면서 가장 크게 마음 아파하십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도를 따라 살지 않는 모습을 보실 때 마음 아파하십니다. 영적인 부름을 따라 살지 않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것을 볼 때 성령님은 마음 아파하십니다. 마음이 깨끗지 못하며 생활이 정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실 때 성령님은 마음 아파하십니다. 게르으고 나태한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성령님은 마음 아파하십니다. 우리의 원망과 시비, 불평을 들으실 때, 성령님은 마음 아파하십니다. 땅의 것만 생각하며 사는 우리를 보실 때 마음 아파하십니다.

자꾸 넓은 길로 가는 우리를 보며 마음 아파하십니다. 주를 위해 받는 고난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실 때 성령하나님은 마음이 아프십니다. 믿음의 증거들이 없는 우리를 보실 때 마음 아파하십니다. 기도하지 않는 우리를 보실 때 마음 아파하십니다. 기도해 놓고 믿지 못하는 우리를 보실 때 마음이 아프십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는 우리를 보시고 마음 아파  하십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지 않는 우리를 보고 성령하나님은 마음이 아프십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우리를 보실 때 마음 아파하십니다. 아직 안 믿는 부모, 형제 자매가 있는데도 전하지 않는 우리를 보시고 마음 아파하십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경건의 능력이 없는 우리를 보실 때 마음 아파하십니다. 차지도 더웁지도 아니하며, 희지도 검지도 않은 신앙을 보실 때 아파하십니다. 성령의 권능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우리를 보실 때 마음 아파하십니다.

돈을 의지하는 사람, 권력을 의지하는 사람, 지식을 의지하는 사람보다 성령을 의지한다고 하는 우리가 더 힘이 없는 것을 볼 때 마음 아파하십니다. 믿는 것 같으면서도 성령의 능력 안에 거하지 못하는 우리를 보실 때 마음 아파하십니다. 성령의 능력을 외면하고 자기 힘으로 살려고 발버둥치는 인생들을 보실 때 그 마음이 아프십니다.

고난주일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생각하며, 그 아픈 마음을 넘어서 이루신 구속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부하나님의 아픈 마음은 우리를 징계하시는 사랑의 아픔이셨습니다. 주님의 아픔은 원수를 용서하고 우리를 구속하신 용서의 아픔이셨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 우리를 참아 기다리시는 성령님의 아픔은 인내의 아픔입니다.

사랑하는 퐁뇌프 교회 성도 여러분 !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지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주님의 아픔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아들의 울부짖음을 듣고도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결국 그 음성 외면하신 하나님의 아픔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계속 성령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묵상하며 지내는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용서를 행하며 지내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을 더 인내하게 하지 마시고, 매사에 늘 동행하시는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아픔 덩어리입니다. 그것은 아픔이면서 사랑이고, 아픔이면서 용서이며, 아픔이면서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아픔을 헛되이 알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의 아픔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노래가 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아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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