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는 사람

2005.04.24 19:58

김승천 조회 수:4273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 II

                                                 사사기 1장 1 절 - 7절

지난 시간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유다 지파가 하나님을 의뢰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또 서로 협력할 때, 승리하는 사람, 성공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실패하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유다 지파가 전쟁에 나섰을 때, 그들이 브리스 사람을 중심으로 한 가나안 사람과 싸워 승리를 하는 중에 적군의 장수를 하나 붙잡았습니다. 그는 아도니 베섹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유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잡고도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잡은 사람이 엄청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적이지만, 그의 명성은 자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70여개국의 왕들을 사로잡았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나라들이 오늘 우리의 국가 개념과는 좀 다르지만, 어째든 70명의 통치권자를 사로잡았다고 하는 것은 분명 그는 전쟁의 영웅이요, 주변 모든 사람에게 두려움의 존재입니다. 더구나 그는 매우 난폭하고 사나운 사람입니다. 아무리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적국의 왕을 대하는 대에는 예의나 걸 맞는 위상을 생각해서, 깨끗하게 죽이든지, 아니면 비록 적국의 왕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대우를 해줍니다. 그러나 이 아도니 베섹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70명의 왕을 모조리 엄지발가락과 엄지손가락을 잘랐습니다.

엄지발가락의 경우는 하루 평균 5톤의 몸무게를 받으며 엄지손가락은 손의 악력을 대부분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잘리면 인간만의 특징인 직립보행이 어렵게 되고, 손의 활동이 크게 둔화되어 활동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굶겼습니다. 나중에 먹을 것을 보았을 때, 개와 돼지처럼 달려들었습니다. 아도니 베섹은 그들을 조롱하면서 음식을 던져주었습니다. 왕의 무리를 떼거지를 만들었습니다. 그의 권세는 하늘을 찌르는 듯 했고, 주변 사람들은 무서워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어서 이제 자기가 포로가 되었습니다. 70개 나라의 왕을 굴복시킨 자기가 나서면 전쟁을 이길 것으로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믿었던 자신의 정예 군인들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베임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살기 위해서 도망쳤지만, 결국 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는 수족의 엄지가 베임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많은 왕들에게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 당연한 보응이 그에게 돌아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역사가 요세프스는 그는 양 엄지만 끊은 게 아니라 양손과 양발이 다 끊겨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7절에 " 내가 옛적에 70왕을 잡아다가 수족의 엄지가락을 다 찍었더니 지금 내가 이렇게 찍혔구나. 하나님이 내게 이렇게 보응하시는 구나 " 비통해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앞에 진정한 회개도 아닐 뿐만 아니라 이미 때가 늦은 것입니다. 군인들에 이끌려 예루살렘에 도착할 즈음에 그는 쓰러져 죽게 됩니다. 그는 그 인생을 실패로 마감합니다. 그가 참혹한 죽음으로 죽었다는 것만이 그가 실패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혹은 전능자의 시각에서도 그는 실패한 인생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을 좀더 자세히 살피면서 삶의 거울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첫째, 실패하는 사람은 사람의 관계에서 실패하는 사람입니다.
영국 속담에 " 다리를 놓으면 그 다리를 계속 건널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은 거미줄처럼 네트워크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래서 한 연구에 의하면 5.5명만 거치면 모든 세상 사람과 연결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세상의 좁은 법칙이라고 말하는데, 결국 5,6명에게만 최선을 다해도 세상 모든 사람을 내편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성공하는 사람은 얼마나 사람들간의 관계지수를 높이느냐? 에 있습니다. 저는 높은 사람에게 아부하고, 비유 맞추어서 팔자 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종 신앙 좋아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매우 긴밀한 것 같으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늘 실패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런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적절한 예가 아닐 수도 있지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서 어쩌다보니 할머니 할아버지 두분만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 할아버지는 금술 좋기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정말로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끔직하게 아꼈습니다. 할머니가 해야 할 많은 일들을 할아버지가 대신 해주었고, 위험이 따르는 일은 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운전해주고, 세금내주고, 은행일 보는 것까지 모두 도맡아서 해주었습니다. 모두들 부러워했고, 할머니 스스로도 나는 남편 복이 많다고 은근히 자랑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복덩이 할머니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것 같은 노부부에게 갑자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할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지시더니 영영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에게만 기대 살던 할머니에게는 난감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간단해 보이던 은행 일도 쉽지 않았고, 가장 큰 문제는 운전이었습니다.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살아가기 위한 사회 적응이라고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운전 시험을 몇 번이나 낙방한 다음에 겨우 합격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 기쁨을 안고 할머니는 차를 몰아 할아버지 산소를 맨 먼저 찾았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열쇠 꾸러미를 무덤에다 내동댕이치면서 " 봐 나도 할 수 있잖아 " 하면서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기대 산다고 하면서 사람들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실패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병들어 돌아가실 리야 없겠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만 소중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된 것입니다. 언젠가 그것을 깨닫게 되는 날, 그는 자신이 실패한 것을 알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아주 대조적으로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울은 사람의 관계에서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실패한 인생입니다. 다윗은 사람의 관계에서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데 귀한 세월 다 보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사위이자 충성스러운 신하입니다. 얼마든지 좋은 관계로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패했습니다. 그의 주변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권력의 무서움 때문에는 남아 있을 수 있어도, 그 마음으로는 모두가 떠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약속을 수도 없이 번복하면서 사람을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 곁에는 사람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의 죽음은 비참했습니다. 다 자기 살겠다고 도망간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떻습니까?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붙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아둘람 굴에 있을 때, 그는 좇기는 신세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삼상 22장에 보면, 환란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자, 그들이 다윗에게 나왔습니다. 참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들이 모두 그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됩니다. 그가 그렇게 도망 다니는 그곳에 400여명이 모였다고 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성의 거민이 2-3천명 정도밖에 안되었다고 합니다. 400명은 엄청난 숫자입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과의 관계에서도 끝까지 잘했고, 그가 죽고 나서도 그를 장사지내준 야베스 사람들도 칭찬하면서 격려할 때, 야베스의 모든 사람이 다윗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자기를 저주하던 시므이에 대해서나, 누구에게든지 다윗은 사람의 관계에서 그들을 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그토록 미워하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요나단에게 조차도 둘도 없는 관계를 유지했던 다윗,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위해 충성하는 사람들, 그가 자기 자식에게 쫒겨 가는 신세가 되었을 때조차, 그에게 목숨을 걸고 충성하는 사람들이 즐비했습니다. 그보다 더한 성공이 있겠습니까?

요셉은 자기를 그토록 미워하고 고통의 길로 밀어 넣은 형들과의 관계도 잘한 사람입니다. 야곱이 죽자 형들은 요셉이 자기들에게 보복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안심시키며, 자기가 애굽으로 내려오게 된 것은 형들이 팔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이 있어서 보냈다고 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이나, 감옥이나 왕궁이나 어디를 가든지, 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교회 생활 잘 하는 것,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일 많이 하는 것 같고, 신앙 뜨거운 것 같아도, 늘 분쟁하는 사람, 늘 트러블 메이커가 되는 사람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이 하나님을 존중히 여깁니다. 특별히 자기가 좀더 높이 있거나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자기보다 약한 사람,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 객관적으로 부족한 사람 그들에게 잘하면 반드시 그들이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힘으로 역사 하는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늘 위엣 사람에게만 잘하는 사람도 사람의 관계를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시대의 아픈자들, 신음하는 자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가장 위대한 점이 무엇입니까? 세상에 가장 낮은 자들을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귀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사람의 관계에 성공하는 사람이고,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아도니 베섹은 사람을 존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무자비하고, 무정했습니다. 그런 사람의 결국은 실패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성공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실패하는 사람은 잘못된 것을 심고, 잘못된 것을 거두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 "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 좋은 것 심으면 좋은 것 거둡니다. 그러나 나쁜 것, 악한 것 심으면 나쁜 것, 악한 것 거둡니다. 아도니 베섹은 원수를 심었습니다. 그 원수 갚음을 그대로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였던 그 왕들의 손에 손가락과 발가락이 짤린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가 심은 대로 거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 한마디라도 잘 심어야 합니다. 윌리암 제임스는 " 인간 본성의 가장 깊은 곳에는 평가받으려는 열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나는 훌륭한 찬사의 말로 두달 동안 살 수 있다" 말 한마디는 인생의 귀중한 보약이 될 수 있습니다. 한마디의 말로 가치를 부여해 줄 수도 있고, 용기를 북돋아 줄 수 도 있고, 의미를 갖게 할 수도 있고, 존경을 표시할 수도 있고, 신뢰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혹시 어렸을 때, 누구에게 들었던 칭찬 한마디가 평생을 용기 있게 만드는 말이 없으십니까? 좋은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일생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선하고 좋은 말은 틀림없이 행복의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유대민족과 모르두개를 죽이려고 악한 꾀를 심던 하만은, 결국 자기가 죽게 됩니다. 그것은 작은 미움으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자기가 높은 장대에 매달리는 참수를 당할 뿐만 아니라, 그 모든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는 엄청난 재앙을 불러오게 됩니다. 그는 가만히 있으면 부귀 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악을 심고, 시기를 심고, 욕심을 심다가 집안이 뿌리 채 뽑히는 엄청난 재앙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 잘 못 심으면 자기만 실패하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 함께 망하게 됩니다.

요나 한 사람이 불순종해서 도망갈 때, 함께 배에 탔던 사람들은 그와 함께 탔다는 한가지 이유로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됩니다. 죽을 고생을 하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자기들이 배에 실은 전 재산을 모두 바다에 던져 넣어야 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잘 심어야 합니다. 다니엘은 왕이 먹는 우상의 제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 하나도 하나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시간을 쓸 때도 하나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잘 관리하는 사람을 하나님도 귀히 여기십니다. 시편 4편3절에 "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잘 심어야 존귀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가정에도 잘 심어야 합니다. 사회에 나가서도 잘 심어야 합니다. 가는 곳곳마다 원수 만들고, 어지럽히고 돌아다니면 결국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교회에서도 잘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기울여 신앙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음악 하는 사람이 연습을 하루 게을리 하면 남들은 모르지만, 자기는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자주 그러면 남들도 느끼게 됩니다. 교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빠지면 사정 있나 보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꾸 빠지면 그 신앙에 문제 있구나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것보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연습 안 하는 음악인보다, 장사 못하는 상업인 보다 훨씬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 인정 안하는 것 열심히 씨를 뿌려 심어도, 그것은 돌밭에 떨어진 씨요, 길가에 떨어진 씨요, 가시밭에 떨어진 씨입니다. 잘되는 것 같아도 안됩니다. 세상에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하나님이 막고 있는데 성공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의 기본적인 생각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잘 심으시기 바랍니다.

부산에 자성대 교회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교회에 정 집사라는 유명한 집사가 있는데, 그 교회를 창립할 때부터 있는 창립 집사님입니다. 큰아들이 교회 회계이고, 며느리가 여전도 회장, 둘째 아들이 주일학교 부장, 셋째가 청년회 회장이면서 성가대 지휘지이고, 딸이 반주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거의 모든 직분을 그 정집사의 일가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분이 열심히 지나쳐서 너무 교회를 쥐락펴락하는데, 그분 때문에 많은 목회자들이 오래 못 있고 결국 떠나게 되었습니다. 목회자가 마음에 안 들면 아들에게 얘기해서 사례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날 제직회를 하는데, 그 날도 역시 목사님에게 왜 그만두라는데도 안 그만 두냐? 고 한바탕 고함을 치고 있었습니다. 교회 옆에 사는 어느 집사님이 발언권을 신청했습니다. 목사님은 평소 그가 정집사와 가깝게 지내는 분이라 발언권을 주는 것이 마음에 낵히지 않았지만, 주었습니다. 정집사는 생각하기를 자기는 평소에도 말이 많아서 사람들이 동의를 잘 안 하지만, 저 집사님은 평소에 말이 없는 분이니까 그가 한마디 거들면 자기 뜻대로 될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생활이 어려워서 평소에 도움을 주는 정 집사와 가깝게는 지냈지만, 그분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일어서서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면서 " 야 정집사 ! 니가 뭔데 목사님을 나가라 마라 하는거야 " 그러면서 달려가서 옷을 잡아 확 팽개쳤습니다. 그리고 회계집사는 마음대로 목사님의 사례비를 안 드려도 되느냐? 여 전도회장은 왜 성미를 안 드리느냐? 소리를 질렀고, 목사님은 강단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직회가 끝나고 그 목사님의 어머니 되는 권사님이 제직회에서 그렇게 소리지른 집사님을 불러서 다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거지, 정집사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니 왜 그게 정집사가 잘못한 거지 권사님이 잘못한 거냐? 고 하니까, 그 목사님의 어머니 되시는 권사님이 자기가 예전에 여 전도회장 하면서 자기 교회 목사님에게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것이 옳은 줄 알고 그랬는데, 그 때문에 자기 아들이 그 고통을 받고 있는 거라고... 자기 아들 목사한테도 말하지 않았는데, 오늘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집사님에게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자기들이 떠나고 난 후에 새로운 목사님께는 마음을 다해서 섬기라고 했다고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도니 베섹은 70개 나라의 모든 사람들에게 치를 떨게 했습니다. 원한을 심었습니다. 한두 명에게 그렇게 한 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를 물고 그를 저주했습니다. 그의 악행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가 유다의 포로가 되었을 때, 그는 같은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악한 것을 심어서 악한 것을 거두게 되었을 뿐입니다.

셋째, 실패하는 사람은 그 중심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유다가 전쟁에 나가서 승리할 수 있는 요건은 브리스 사람이나 가나안 사람들보다 높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도니 베섹같은 장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싸움에서 장수는 중요하지만, 고대로 올라 가면서의 전쟁은 그 싸움을 이끌고 나오는 장수의 몫이 절대적입니다. 장수가 자신 있으면 싸움은 자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수가 시원치 않으면 싸워보나 마나입니다. 그런데, 유다에게는 갈렙이 있기는 했지만, 싸움에 앞장설 만한 나이기 아닙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무슨 무기가 출중하거나 병역훈련이 잘 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것은 아도니 베섹의 정예군이 훨씬 잘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유다의 성공은 그들의 중심에 하나님이 있었고, 하나님께 그 전쟁의 승패를 물었습니다.

성경에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이 전쟁은 그 중심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구별됩니다. 아도니 베섹은 자기가 전에 70개 나라의 왕들에게 못되게 해서 이런 벌이 자기에게 돌아오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전쟁은 어느 때, 어떤 모양으로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처참하지 않은 전쟁은 없습니다. 전쟁 자체가 피비린내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도니 베섹이 자기의 포로들을, 그 왕들을 무자비하고, 무정하게 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 중심에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중심에 없는 사람, 그 사람은 결국 실패합니다. 성공하는 것 같을 수는 있습니다. 성공한 것 같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실패입니다. 그것은 숫자에 상관없습니다. 갈멜산에서 850명의 바알의 선지자들과 엘리야 달랑 혼자서 대결할 때, 백성들의 마음은 850명에게 기우러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예식에 무엇인가 역사 될 것 같았습니다. 거창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자기들이 자기들의 예식에 흥분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정말 중요한 응답이 없었습니다. 다 되어 있었는데, 어쩌면 응답후의 환호성까지도 준비되어 있는데, 그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도무지 응답이 역사 될 것 같지 않습니다. 별로 수종드는 사람도 없이 홀로 진행합니다. 그러나 응답되어야 하는 그 순간에 하늘을 가르며 불이 그 제단에 임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 중심에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의 차이입니다.

왕의 보좌에 앉은 바로와 조그만 작대기 하나들고 그 앞에선 모세의 경우 그 모양과 그 권위에 있어서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힘이 바로에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하나님이 그 중심에 있고, 한 사람은 그 중심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한 사람은 결국 승리하게 되며 한 사람은 실패하게 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그 중심에 하나님이 있습니다. 실패하는 사람은 그 중심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나님 떠나 무엇인가? 이루려고 하는 것 다 부질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돈돈 하면서 돈 많이 벌어도 그것으로 만족 못합니다. 명예, 권력, 남들이 알아주는 것, 다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작은 마음을 채울 수 있고, 그 뚤린 마음의 마개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그것을 인생을 다 허비하고 아느냐? 아니면 일찍 아느냐? 하는 것이 불행이고 축복입니다. 성공이고 실패입니다. 아무것도 안 가졌어도 그 중심에 하나님이 있으면 다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 가져도 그 중심에 하나님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어떤 사람이 실패하는지 잘 들으셨습니까? 아도니 베섹이 어떤 사람입니까? 사람의 관계에서 실패한 사람입니다. 잘못된 것을 심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하나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결코 실패하는 사람이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서로 협력해서 성공하는 인생이 될지언정, 아도니 베섹처럼 실패하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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