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겨 놓은 싸움을 지는 사람들

2005.06.15 16:49

김승천 조회 수:3342

                                               사사기 1장 27 - 2장 5절

여러분 지난 일주일 동안 세상 풍파에 시달리시느라 얼마나 지치셨습니까? 제가 잠깐 노래를 불러 드릴 테니까 눈감고 편안하게 계시든지, 그러다가 졸리면 잠깐 주무셔도 됩니다. 이건 제가 절대 노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서 입니다.

그 불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니 나가는 길이 형통하겠네.
그 요단강을 내가 지금 건넌 후에는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주가 맡긴 모든 역사 힘을 다해 마치고 밝고 밝은 그 아침을 당할 때
요단강을 건너가서 주의 손을 붙잡고 기쁨으로 주의 얼굴 뵈오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자 이제 일어나시고, 제가 찬송한 것 중에 공통점을 아시는 분 ? 예, 요단강 건너가 만나자는 내용입니다. 그 요단강 건너가 어디입니까? 가나안입니다. 가나안은 약속의 땅이고, 축복의 땅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지역적인 가나안 땅, 그 별로 크지도 않은 그 땅을 그 백성들이 차지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고 또 오는 모든 시대의 믿는 자들이 차지하게 될 영원한 기업의 예표입니다. 우리는 모두 가난 복지 귀한 성에 들어가야 하며, 그곳은 새 예루살렘이 있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사사기 1장 27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그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이스라엘 여러 지파의 모습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지파들이 완전하게 정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유다 지파가 철병거를 가진 골짜기의 거민들을 좇아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사는데 별지장 없는 것 같아서 그냥 두었지만, 나중에 그들이 불레셋이 되어 큰 가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가나안에 아무리 강성한 사람들이 산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물리치지 못할 거민이나 차지하지 못할 땅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나서신, 이미 승리의 깃발을 꽂은 땅입니다. 제가 오늘 " 다 이겨 놓은 싸움을 지는 사람들 "이라는 제목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겨 놓으신 싸움, 차지해놓은 땅, 그런데 그 이겨 놓은 싸움을 지는 사람들이고, 다 차지해놓은 땅을 빼앗기는 꼴입니다.

요셉 족속에 속한 므낫세 지파가 자신들의 땅을 정복하러 나섭니다. 그러나 그 거민들을 다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불론 사람들도 그렇다고 했습니다. 아셀지파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답달리 지파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단 지파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그것이 1장 후반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땅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하는 이유가 각 지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몇가지의 경우를 살펴보면, 므낫세 지파 같은 경우는 못 쫓아 낸 것이 아니라 일을 시켜 먹기 위해서 일부러 쫓아 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간적인 계산입니다. 그것은 당장은 유익한 것 같지만, 결국 자기들을 좀먹고, 자기들의 영적인 생활을 혼란하게 만들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섞어 놓을 것입니다.

여러분 !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자꾸 신앙의 열심을 후퇴시키거나, 우선 순위의 문제를 뒤바꾸어 놓게 되면, 결국은 넘어집니다. 세상의 가치관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삶, 악한 습성을 타협하게 되면, 지금은 견딜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신앙은 므낫세 지파 사람들처럼 자기 마음대로 결정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에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방식과 의지가 있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손해가 되어도, 아픔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승리하는 삶입니다.

스불론 지파 같은 경우는 기드론 사람과 나할라 사람들이 간곡하고, 애절하게 부탁하게 됩니다. 노예가 될테니 쫓아내지만 말아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스불론 사람들은 마음이 약해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늘 그렇게 숨죽이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두고두고 그들의 근심거리가 될 것이며, 그들의 아픔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흔들리게 하는 것은 늘 강하게 부딪쳐 오는 것만이 아닙니다. 아주 애처롭게, 불쌍하게 해서 우리의 마음을 파고듭니다. 그러나 우리의 약한 심성에 기대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당당한 자녀로 나서지 못하게 하는 올무를 치게 됩니다.

사막의 밤에 낙타가 밖이 너무 추우니까 제발 머리만 텐트 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어깨가 시려서 그런데 어깨까지만 들어가게 해달라고, 앞발이 시리다고, 배가 춥다고, 결국 주인을 밖으로 밀어내고 자기가 차지한다는 이야기를 아시지요? 살그머니 들어오고, 애초롭게 들어온다고 독이 변하여 유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셀 지파, 납달리 지파 사람들은 악착같이 반발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하고, 같이 살게 됩니다. 귀찮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꼭 그렇게 까지 다 없이할 필요가 있을까? 자신들이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정도면 우리가 살만한데, 저들이 감히 우리에게 무슨 해를 입히겠어... 그러나 그것은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만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를 반드시 넘어뜨립니다.

프랑스에서 감기 걸리거나 어떤 병에 걸려서 약을 사서 먹으면, 한 5일만 먹으면 증세가 다 없어지는데 10일치의 약을 줍니다. 그런데 다 먹는 것이 좋습니다. 잘못하면 병이 나은 것이 아닌데, 가라앉은 것을 나은 것으로 착각해서 약을 그만 먹으면, 병을 키울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판단에 의지하지 말고, 의사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주의 말씀에 의지해야합니다. 끝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단 지파 사람들은, 다 쫓아내지 못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쫓겨났습니다. 아모리 사람들이 단 지파 사람들을 산지로 쫓아내고, 골짜기로 내려오기를 용납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그 땅을 차지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며 다른 땅을 찾아 살 궁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섭워서 정복할 생각조차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복하지 않으면, 정복당하게 되고, 우리가 사탄을 공격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탄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어나야 하고, 정복해야 합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시선을 피할 곳도 없지만, 사탄의 역사를 피할 곳도 없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하는 것이 최선책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고, 재산을 물려주었을 때, 그것을 잘 보존하고, 확대해 가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말아먹는 자식이 있습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한다고 하는 것은 마치 부모가 기업을 물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절차상의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지,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차지하면 되는 땅입니다.

우리는 이미 가나안을 자기의 땅으로 선언하시고, 싸워 이기신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승리하신 싸움에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을 꽂기만 하면 되는 영적인 싸움을 싸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신앙의 싸움에서, 예수께서 다 이겨놓은 싸움에 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피 흘리시며, 죽으시며, 그 죽은 자리에서 부활하신 그 승리를 이길 사탄의 세력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탄과 싸워서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싸움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승리해 놓으신 싸움을 믿기만 하고, 순종하기만 하면 자기의 것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므낫세 지파 사람들처럼, 인간적인 계산으로 굳이 그렇게까지 냉정하게, 혹은 손해 볼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현실과의 타협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원하심과 자기의 원함을 교묘히 섞어 놓으려고 하는 자세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하나님의 원하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스불론 사람들처럼, 마음 약해서 자꾸 세상에 자기의 마음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불 신앙을, 그런 생활을 자신이 용납하는 것입니다. 아셀과 답달리 지파 사람들처럼, 악착같이 덤벼드는 사탄의 세력을 귀찮아하거나 승리를 자만하다가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단 지파처럼, 아예 신앙의 싸움을 피해서 빌빌거리며 사탄의 뜻을 크게 거스리지 않으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셔서 이루신 승리인데, 우리가 그 가나안 땅을 좀 먹도록 내버려두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절망스럽게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성아 엄마가 뇌 종양 절제 수술을 받고 났을 때, 의사가 하는 말이 종양의 95 % 이상 짤라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는 못 없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나머지는 거의 반드시 또 자라게 되고, 그것을 악성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죽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나머지가 5/100 도 안되는 것이지만,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거해야 할 것을, 어떤 의미에서든지 남겨두면 결국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난 교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가나안 땅을 온전히 차지해고 지켜서, 정말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사기 2장으로 넘어가면서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는데, 하나님이 화가 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 지파에게 분배된 땅을 정복해 가는데, 철저하게 이루지 못했습니다. 어떤 경우는 자기들 보다 강한 것 같아서, 어떤 경우는 자기들 보다 약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부려먹기 위해서, 완전히 쫓아내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적당하게 정복하고 그 정복을 마무리 지어가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제 각 지파가 어느 정도 살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들은 모여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서로 자축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서로 자화 자찬하면서 분위기가 고조 될 무렵, 길갈에서 사람이 왔다는 것입니다. 각 지파의 두목들은 그를 청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자기가 길갈에서 온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길갈... 그들은 언젠가 요단강을 건넌 후에 그것을 기념하여 열두 돌을 세워 놓았던 그곳이 길갈 이었음을 기억했습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요단강에 발을 놓을 때, 흐르던 요단강이 갈라지고 그 강을 건너 수 백만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강을 건너온 곳, 그래서 기념하던 그곳, 자기들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의 뜻만을 따르겠다고 결심하던 바로 그곳이 길갈입니다. 지금 그들은 벧엘에 있었지만,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서 계획하고 출정하던 첫 장소가 바로 길갈입니다. 그곳으로부터 한 지파 한 지파 분배받은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출발하던 곳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말하기 시작합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열조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 땅으로 들어오게 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땅을 영원한 이스라엘의 땅으로 삼으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마음에 뿌듯한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그 땅을 자신들에게 주실 것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계속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너희에게 명하신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가나안 거민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의 섬기는 우상의 제단을 헐어버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가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그 음성이 단호하고, 커졌습니다. " 왜 불순종하였는가? " 2절에 말씀합니다. "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는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

사람들의 마음은 자신들이 저지를 불순종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계속 말합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사람들을 그대로 있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애써서 쫓아내려고 해도, 하나님이 도와 주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남겨 놓은 가나안 사람들이 가시가 될 것이고, 가나안 사람들을 섬기는 신들이 이스라엘의 올무가 되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3절에 말했습니다. "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

여러분 !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죄의 노예가 되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너희를 사랑해서 구원하기로 했다, 그래서 아들을 보내 십자가에 달리는 엄청난 고통을 지켜보는 사랑으로 너희를 구원했다. 그리고 이제 너희가 그렇게 살기를 원했다. 오직 새로운 마음으로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 살기를... 너희의 몸을 의의 병기로 드리면서 살기를... 하나님의 자녀이면 자녀답게 살기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이 되기를... 그런데, 너희들 너무 멋대로 살아가는 것 아니냐? 너희들 너무 너희 기분대로 살아가는 것 아니냐? 고...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너희의 생활이, 자세가 너희의 올무가 되어 결국 힘들고 비참하게 만들어 갈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공짜이지만, 행복은 공짜가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나안의 행복을 가지려면 악의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서 광명의 천사를 가장한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악의 쓴 뿌리를 남겨두면 결국 다시 자랍니다. 지금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영원한 내일의 행복을 위해서 기꺼이 오늘의 아픔을 택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말할 때, 그들은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슬펐습니다. 후회 스럽기도 했고, 고통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말에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보김" 즉 우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 보김에 서지 마십시다. 하나님의 책망이 가슴 서늘하게 들리는 그런 자리, 두려움과 슬픔에 눈물이 한없이 나는 그런 보김에 서지 마십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늘 우리의 신앙을 출발하던, 바른 신앙을 결심하던 길갈을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의 열두 돌을 세우며, 오직 하나님이 이끄셔서 가나안을 건너게 하셨고, 앞으로도 하나님이 인도해 주신 것을 믿고 따르기로 결심하던 그 길갈을 기억하십니다. 주께서 애써서 이루어 놓으신 승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신 그 싸움, 그 승리의 싸움, 그 다 이겨 놓은 싸움을 지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지 말고, 약속의 땅이며, 축복의 땅 가나안을 온전히 정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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