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으로도 변명이 안되는 사명

2005.06.15 17:11

김승천 조회 수:3384

                                                  사사기 2장 6절 -15절

오늘 말씀은 우리가 산다고 다 사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살거나 희생하면서 산다고 다 잘 사는게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적어도 미래의 재앙은 무엇으로 막는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호수아가 살아있을 때는 물론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섬겼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었을 때, 그를 에브라임 땅에 장사 지낸 후에도 사람들은 계속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당시의 사람들만 하더라도 하나님이 자기들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그들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여호수아와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7절부터 기록된 말씀에 "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일백 십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 딤낫 에레스에 장사하였고,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

여호수아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을 한번 생각해 보면, 그들은 참 파란 만장한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광야를 지나며 열악한 환경속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며 지낸 사람들입니다. 환경이 그렇게 안 좋다 보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순종해서 죄를 범하게 되고,(물론 환경이 좋다고 죄를 안 짓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벌도 많이 받고,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을 넉넉하게 배우게 된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수도 없이 하나님의 많은 기적들, 그 대부분은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을 느끼고, 그러면서 그들의 신앙은 자라고 단단해졌을 것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서서도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약속의 땅을 받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했으며, 고생도 많았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마음에 자기들의 후손만큼은 이런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더욱 열심히 힘겨움과 싸웠을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세월이 흘러서 그들도 늙고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숨차게 달려오고 열심히 살았기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신경을 못쓰며 산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녀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제대로 말해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며,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해주지 못했습니다. 분주하고 고생스러운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그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어야겠다고 정신차렸을 때는 이미 자식들이 다 성장해서 자기들 나름대로 너무 바쁘게 살아가고 있고, 이미 자기들의 스케줄과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미 늙었습니다. 하나님을 가르치지 못한 것이 마음 아팠지만,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부모들은, 그 땅의 거주 1세대들은 자기의 자녀들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한사람 한 사람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광야 시대를 살아온 맨 마지막의 사람들도 다 늙었고, 마지막 잎새처럼 남아 있던 사람조차 다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한 참 시간이 더 흘렀습니다. 누구도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모두 나름대로 바쁘게 살았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살다가 그들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의 마음에 신을 예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지 모릅니다. 자기들이 부리는 노예들은 어느 때가 되면 자기들의 신 앞에 멋지고 웅장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 것에 공연히 부러움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들의 조상들도 하나님을 섬겼다는데, 하나님이 누구인지 잘 모르고, 무슨 일을 했는지도 잘 모르고, 그래도 기왕 신을 섬긴다면 자기들의 조상이 섬겼다는 신을 섬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냥 할아버지가 자기 어렸을 때 가끔 제사를 드리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방의 종교에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10절에 " 그 세대사람도 다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대부분 젊어서 그렇게 많은 분들이 자녀들의 문제로 심각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어느 시대이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자녀의 신앙 교육입니다. 분주해서 아이들 학교 생활하는 것 잘 봐주지 못하면서, 아니 아이들 얼굴 볼 틈도 없이 바쁘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만 자라주는 것도 고맙지, 신앙 교육은 무슨 신앙 교육? 그것은 교회가 알아서 하든지, 아니면 이 다음에 자기들이 커서 알아서 신앙 생활 잘하겠지... 이런 자세 속에, 세월이 쏜살같이 흐르고 얼마나 엄청난 비극이 찾아오고 있는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합니다.

어렸을 때 좀더 철저하게 하나님을 알도록 가르켜 주지 않고, 아이들이 커서 자기 마음대로 할 때, 신앙생활 잘 못한다고 야단칩니다. 주일 잘 지키지 않고, 새벽기도도 안나가고... 십일조도 안하고, 봉사도 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자녀들은 그렇게 하나님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생의 위기를 만나고 곤고함을 만나도 하나님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입니다. 왜 그 부모에게 하나님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튜니지 세미나에 갔을 때, 한국의 신학교에서 교수님 한 분이 강사로 오셨는데, 구약학 교수님이신데 "다윗의 시편에 나타난 영성"인가? 하는 제목으로 강의를 하시는데, 목소리도 그렇고 표현도 그렇고 얼마나 시적인지... 다윗이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그 시적인 표현이 얼마나 마음이 뭉클하고, 또 짜릿짜릿한지... 하여튼 참 감미롭고 부드러운 그런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이신데, 그래서 다른 어느 강사님은 그분 후에 강의를 올라와서 목사님은 정말 그렇게 시를 읽으시면 감동이 오시냐?고 자기는 아무 생각없는데... 그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님이 하나님과  그 자녀의 관계에서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중에, 자기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참 공부 안하고 말썽부리고 속 꽤나 썩이던 아들이 있었는데, 나중에 그 자식이 신학교를 가겠다고 하더래요. 그러더니 자기가 아이들 가르치는 학교에 원서를 넣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이 자식이 아비 망신을 시키기로 작정을 했구나 생각을 하고, 동료 교수들에게도 자기 아들이 이 학교에 원서 냈다고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기는 성적 좋은 것은 고사하고 틀림없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그래도 시험 운이 있었는지 붙었다고 합니다. 그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맨 마지막에 혼자 중얼거리듯이 " 에잇 썅놈의 자식 " 저희들이 모두 깜짝 놀라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부드럽게 시를 강의하시던 분이 갑자기 한숨을 쉬시듯이 그런 욕을 하셔서... 자녀를 향한 마음이 얼마나 까맣게 탔었기에... 하는 생각을 모든 목사님들이 하셨을 것입니다. 참 자녀 교육 쉽지 않습니다. 신앙으로 교육한다고 하는 것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나 정말 열심히 해야 합니다.

지난주에 파리에 어느 자매님이 자살을 했습니다. 신경 쇠약 같은 것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끊었는데, 그분이 생전에 어느 목사님께 고백하기를 자기는 유학할 때, 돈을 쓰고 싶은 대로 원없이 써봤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를 만족시키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망가지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자살에 이르기까지 아니 그 이전에 정신 분열이 생기고, 신경쇠약이 되도록 문제가 한두 가지이겠습니까? 그리고 죽고 싶은 심정, 죽을 것 같은 상황은 그분에게만 찾아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심정, 그런 환경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신앙을 가진 사람이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그런 극단적인 상태로 나가지 않습니다. 자식이 죽고 어머니가 와서 사위에게 네가 내 딸 죽였다고, 그렇게 울면서도 그분 자기가 교육을 잘 못시켰다고... 너무 의지력이 없이 키웠다고 후회했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는 그것이 의지력의 문제로 보지만, 제가 생각할 때는 인생의 의지력으로 못 버팁니다. 얼마나 이를 악물고 추락하는 자기를 세우려고 했으며, 괴로움을 털어버리려고 애를 썼겠습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 정말 기도하면서 부지런히 하나님 알도록 해야 합니다. 많이 가르치는 것, 하나님 없으면 더 빨리 미치는 지름길입니다. 특별하게 키우는 것, 하나님 없으면 특별하게 미칩니다. 도대체 미래에 우리의 자녀들이 무슨 기준이 있어서 그들이 이 시대 앞에 바르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왜 마약하면 안돼? 왜 동성 연애하면 안돼? 왜 이렇게 마음대로 살면 안돼? 왜 안돼?를 무엇으로 말할 수 있습니까? 기준이 다 해체되는 시대입니다. 자기 기호가 그것을 싫어하는 것 이외에 안되는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무엇이 그들의 생활과 삶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의 자세 아니면 아무것도 기준이 안 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 중고등부 학생들 헌신예배 준비한다고 철야기도회에 그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저들이 교회 안에서 저렇게 자라는 것이 저들의 인생에 얼마나 귀한 보약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며, 희생하며 살았는데... 하는 것은 이유가 안됩니다. 아니, 이유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이유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변명은 안됩니다. 비록 그 자녀가 편안한 내일을 살기 위해서 그렇게 고생하면서 살아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제대로 가르쳐 놓지 않으면, 하나님을 바로 알도록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정말 열심히 하나님 믿는 것, 보여주고 계십니까? 정말 열심히 기도하는 것, 봉사하는 것, 하나님 사랑하는 것 보여주십니까? 우리의 사명은 자식을 편안하게 먹여 살리고, 내일의 먹을 것을 준비해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 모르는 세대로 넘어가도록 하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자기들은 하나님 예배하는 법을 다 잊어버렸는데, 그 땅에 살던 다른 족속들은 바알을 섬기거나 아스다롯을 섬기는데, 그 절차나 그 행위들이 신기했습니다. 술을 마시며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그들의 예배에 같이 동화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또 그렇게 이방신을 섬기는 일에 어울리면서 예쁜 여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어색함도 있었고, 이러면 안돼는데 하는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굳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섬기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11절에서 13절에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

하나님을 배우지 못한 세대는 종교 다원주의로 빠지게 되고 범신론적인 신앙관을 갖게 됩니다. 자기가 어떤 종교이건 신념에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문선명이 아들이 불교 강의를 듣는다고 해서 신문에 기사가 난적이 있었는데, 어설프게 종교성만 조금 있도록 아이를 키워놓으면 아이는 온갖 종교를 기웃거리며 어느 곳에 심취해 보려고 합니다. 이것도 미치는 길입니다.

원래 종교란 신으로부터의 계시성이 중요한데, 요즘은 자신의 종교를 자기가 만들어 갑니다. 종교를 만든다기 보다는 신앙의 형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좋은점, 불교의 좋은 점을 적당히 섞거나, 천주교에서 원하는 것이나 유교에서 괜찮은 것을 섞어서 자기가 믿고 싶은 형태를 만드는 것입니다. 절대자, 유일하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인생들의 마음은 난장판이 되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을 좇았다고 하는 말씀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 섬기는 우리의 예배가 성경이 말하는 바른 예배인지... 성경 말씀속에 성령님의 만져주시는 감동의 예배인지 아니면, 감동적인 이야기가 마음을 터치하는 것인지,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신앙의 고백인지, 아니면 감미로운 메로디에 취하는 예배인지... 저는 예배가 예배를 인도하는 연극자를 위해서 화려해지거나 연극처럼 변해 가는 예배는 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찬양할 때, 기타도 치고 드럼도 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술만 없는 카바레를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자칫 하나님이 안 보이는 예배, 하나님을 느낄 수 없는 예배, 그것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결과로 생기는 착각입니다.

우리 이제 작은 작은 아이들을 둔 엄마, 아빠들 아이들에게 신앙 교육 잘해야 합니다. 교회 밥먹듯이 빠지고, 조그만 일 있어도 빠지고, 생전 성경안보고, 기도 안하고 하다보면 금방 아이들 자랍니다. 왜 이스라엘에 이런 문제가 생겼는가? 그들의 1세가 잘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31장 12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 또 너희가 요단을 거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의 자녀로 하여금 자기의 신앙보다 더 좋은 신앙인이 되도록 하는 것보다 인생의 큰 사명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가장 성공한 인생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추락하는 그들을 더 이상 그대로 놔둘 수 없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나 말로는 이미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혹독한 채찍을 드시는데, 주변의 나라를 일으켜 그들을 치게 하셨습니다. 애써서 쌓아놓은 재산을 잃게 하고, 처자식을 빼앗기고 죽고, 군인들을 모집해서 싸움을 나가도 번번히 깨지게 하셨습니다. 14절에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들로 노략을 당케 하시며, 또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치 못하였으며 "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15절에 보면 "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며... " 어디를 가든지 는, 무엇을 하든지 되는 일이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막으신 것입니다. 이상하게, 끊임없이 재앙이 되풀이되고, 잘되는 것 같아도 막판에 무너지고, 그들은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합시다 " 잘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막으시면 안된다 "

하나님이 막으시는데, 잘 될 수 있는 인생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는 곳마다 축복하시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든지 축복하시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하십시다 "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을 살자 "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절에 "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

이스라엘 백성들을 때리실 때, 그들을 징계하실 때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식이기에, 사랑하는 자식이기에 때리는 것이고, 때리고는 자식보다 아버지가 더 많이 우시는 것입니다. 저희 아버님도 자식을 때리고 나면 너무 마음이 아프셔서 아이가 눈물을 그쳤을 때, 불러서 돈을 주면서 사탕을 사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자식을 키워보면서 그 아버지의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합니다. 매를 맞은 자식은 금새 잊어도 때린 부모는 그 마음이 오래도록 아픈 법입니다. 사랑하기에 징계하십니다. 사랑받는 자녀이면 징계하십니다. 마음대로 살아도 아무런 아픔이 없다면, 사랑의 대상이 아닐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버지는 힘들어도 자식을 징계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의 말씀을 읽고 마치려고 합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궈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늘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

사랑하는 퐁뇌프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아무리 자식을 위해서 희생적인 삶을 살아도 그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도록 키우지 않는 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사명에 변명할 수 없습니다. 희생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희생이 우리의 사명을 대신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도 열심히 하나님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젊은이들 열심히 하나님 믿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눈 깜짝 할 사이에 우리의 시간들이 지나며 다음 시대가 설 것입니다. 세상의 가장 큰 재앙은 환경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하나님 모르는 세대가 오는 것입니다. 좋은 신앙을 물려주는 부모님, 선배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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