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키를 잊어버리지 말자

2005.06.15 17:13

김승천 조회 수:3625

                                                  사사기 2장 16 - 23절

최고 경영자 예수(JESUS CEO)라는 책이 있습니다. 읽어 보셨습니까? 책을 많이 팔기 위한 마케팅의 전략으로 예수님을 이용한 느낌이 드는 제목 때문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깊은 통찰력으로 잘 쓰여진 책입니다. 예수님의 리더쉽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인데, 한번씩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그 책에 보면, "예수님은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하셨다"는 제목의 글이 있는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샌디에이고의 경치 중 가장 장관은 해변의 일몰장면이다. 해가 느릿느릿 수평선으로 잠기어 갈 때, 수백 마리의 바다 갈매기들은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 채 조용하면서도 엄숙하게 작별을 고한다. 그런가 하면 펠리칸들은 일몰에 대한 인사라도 하듯 완벽한 대형을 지어 파도치는 수면을 스치면서 날아간다. 해안에 걸쳐있는 다리 위에서는 수천 마리의 새들이 전깃줄에 도열하여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저물어 가는 하루에 작별 인사를 한다. 아마 그들도 엄숙하게 " 하나님, 심지어 우리 가운데 하나가 떨어질 때도 아시고 보살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공중에 나는 참새까지도 돌보아 주시고 먹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라고 기도할 것이다.

그러면서 당신은 하나님께 어떤 것을 요구하기 전에 감사하느냐? 당신이 은혜로 충만한 심장을 가지고 있다면 이식된 심장은 필요치 않을 것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1장에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 전에 항상 자신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했고, 17장 그의 마지막 기도에서는 베드로나 요한 야고보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을 곁에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은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한국 전쟁에서 추운 겨울에 어느 흑인 장교가 차를 타고 강을 건너다 바람결에 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는데 그냥 지나치지 않고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거기 이미 엄마는 동사했고, 엄마가 자기느 죽어가면서 까지 자신의 옷으로 꽁꽁 싸매어 품고 있던 아기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치지 않고 우는 아이를 생각해서 엄마를 서울 어느 공동묘지에 묻어주고, 본국으로 귀국할 때 아이를 데려가서 양녀로 삼아 길렀습니다. 아이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성숙한 사회인이 되었을 때, 그의 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딸은 어머니가 묻힌 한국에 데려가 어머니의 무덤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겨울 휴가를 얻어서 한국에 온 그들은 그 무덤을 찾았습니다. 마침 눈이 와서 무덤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었는데, 딸은 자기의 옷을 벗어서 엄마의 무덤을 덮어주고 "어머니 얼마나 추우셨어요. 얼마나 추우셨어요" 하면서 한나절을 울었다고 합니다. 자기 어머니의 그 희생적인 사랑을 감사하는 딸이 마땅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의 은혜를 감사하는 자녀가 아름답습니다. 선생님의 교훈을 감사하는 제자가 귀합니다. 남편의 수고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아내가 훌륭한 아내입니다. 하나님과 교회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교회에 감사하는 성도가 바른 성도입니다.

성공하는 인생의 키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신 아름다운 삶이 되는 키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든, 사람에게든 감사하면 그 감사는 자기에게 기쁨이 되어 되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남을 비판하고 헤아리는 사람은 역시 비판과 헤아림이 돌아오게 됩니다. 감사는 기쁨을 순환하게 하고, 비판은 괴로움을 순환하게 합니다.

오늘 말씀은 "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게 하셨으나 그들이 그 사사도 청종치 아니하고 돌이켜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좇아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 열조의 행한 길을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치 아니 하였더라 " 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데,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을 기억하지 않으셨으면 아직도 애굽의 종이 되어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텐데, 그 힘들고 복잡한 여정을 지나는 동안 그들을 지키셔서 가나안에 들어와 자유를 누리며 살게 하셨는데... 그들이 그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광야를 지나며 양식이 없을 때 하늘 양식을 먹게 하시고, 반석에서 샘물이 나게 하시고, 동풍에 메추라기를 불게 하시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 포도 한 송이 두 사람이 메고 가야 할 만큼 그 풍요로운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감사치 않고 오히려 마치 우상의 도움으로 그들이 그렇게 살게 되기나 한 것처럼 그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날 때, 하나님은 아파하셨고, 그러면서 사랑하셨기에 그들을 징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해 보면 참 안타까우셨을 것 같습니다. 잘못을 해서 징계를 하시다가도, 그 징계로 인해서 고통스러워하는 자기 백성을 보면 그냥 둘 수가 없어서 구원해주고, 은혜 주면 또 얼마 안 가서 다 잊어버리고 매맞을 짓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안타까움과 아픈 마음의 반복이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 보다 낫을 것 하나도 없습니다. 마치 애굽의 노예를 불러내듯이, 죄의 노예 되었던 우리를 구원해 주셨는데, 끔찍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은혜 주셨는데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곁길로 가는 것입니다. 감사를 잊은 백성은 반듯이 은혜를 떠나게 됩니다. 감사는 우리 인생의 배가 순항하기 위한 키입니다. 이것을 잊으면 길을 잃고 방황하고 헛된 삶을 추구하게 됩니다.

18절에 "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사사를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의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

저는 이 말씀에 의탁해서 여러분에게 좀 높은 도전을 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에 하나님이 부르신 사사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고 싶어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의 터전에 하나님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사사가 되겠어? 내가 무슨 하나님의 일을 하겠어 ? " 두려워 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사를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사사에게 혼자서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두신 것이 아니라 일을 맡기실 때는 함께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 것을 잘 아시고, 우리가 당신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없는 것도 잘 아십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우리에게 맡기실 때에는 당신이 함께 해 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이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맡겨질 때, 용기를 가지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속에 내제 되어 있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맡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능력입니다. 사사란 바로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바로 여러분을, 여러분의 서신 자리에 사사로 부르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하는 말이지만, 예수님의 제자 중에 누가 인류 구원 역사에 초창기 멤버로 자격 있는 일꾼이겠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부름 받았을 때, 다 순종하고 따랐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발하실 때, 옥신각신하며 자격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할까? 말까? 하는 줄다리기는 없었습니다. 애초에 주님이 그런 논쟁의 대상에서 벗어난, 자격 없는 사람들을 부르셨는지도 모릅니다. 하여튼, 그들은 모두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따랐습니다. 어쩌면 그 한가지 용기, 무식할 만큼 단순하게 순종한 그 용기 하나로 그들은 인류 구원의 초석을 놓는 예수님의 구원사역에 큰 일꾼들이 되었고, 주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그의 마지막 기도에서 그들을 주신 것을 감사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로써 합당한 자격을 갖추고 제자가 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이후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꾼으로 부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이 시대의 사사가 된다고 하는 것은 그 부름에 합당한 조건을 갖추고 일꾼이나 사사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하겠다고 순종하면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사사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설뿐 아니라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을 교훈하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서게 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있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사사를 세우실 때에 그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을 평안케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사가 죽으면 또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19절입니다. "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여 다른 신들을 좇아 섬겨 그들에게 절하고 그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

우리가 말씀을 대하는 것에서 느끼는 간격보다는 사이사이 많은 시간들이 흐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로 하나님 모르는 세대로 흘러갔습니다. 자기들의 부모가 사사와 함께 살아가던 시대에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들은 부러 잊으려 했고, 잊어갔습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을 모를 뿐만 아니라 매를 맞아도 원인을 모르는 마비된 영성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간혹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것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된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삶과 생활에 하나님에 대한 의식, 감각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예상한 하나님은 그 땅의 가나안 사람들을 모두 좇아내지 않으시고 남겨두신 것입니다. 그 남겨진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보는 거울과 같았습니다. 21,22절 말씀 "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둔 열국을 다시는 그들의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그 열조의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

하나님이 없는 이스라엘은 무너지고 실패하게 됩니다. 하나님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사기 뒤편으로 가면 적나라하게 나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 없이 몰락하는 모습입니다.

왜, 이들에게 이런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함께 하셨던 은혜를 잊은 것이요, 감사치 않은 것입니다. 은혜를 잊어버리는 자, 감사치 않는 백성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요한 집안의 자녀들이 빗나가는 경우는 대부분 감사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기르면서 부지런히 감사하도록 길러야 합니다. 작은 것에도 늘 정중하게 감사하는 버릇을 익히면 그는 결코 함부로 사는 인생이 되지 않습니다. 조그만 사탕을 하나 받았을 때도 반드시 감사합니다. 하도록 배우고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

사사기 2장은 그렇게 끝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자신을 뜻을 몰라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그들을 포기하면 될텐데, 그냥 신경 꺼버리면 될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우리가 그렇게 단순하게 말한다면 우리는 아직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다 모르는 것일 것입니다. 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할찌라도 다시 시작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기어코 자기 백성을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고야 마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그렇게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어느 간호사가 쓴 글을 읽었습니다. 어느 날 병원에 출근했더니 좀 나이 드신 어머니와 다 큰 딸 같은 사람이 서로 손을 다정하게 붙들고 이야기를 하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간호사는 의사 선생님도 오시지 않고 진찰을 하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들은 알았다는 듯이 계속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하고 기다리는 중에 의사가 와서 진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어머니와 딸은 계속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인 듯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아이가 어려서 방학 때 외가댁에 놀러갔다가 문틈에 왼손이 끼어서 손가락이 모두 잘라져서 봉합 수술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손가락들은 다 붙어서 괜찮았는데, 왼쪽의 네 번째 손가락이 그렇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머니 말은 이 아이가 얼마 안 있으면 결혼을 하게 되는데, 남편 될 사람은 괜찮다고 하지만, 어미 된 입장에서 딸이 결혼식 때, 반지를 낄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자기가 늙어서 손가락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자기 손가락을 딸에게 이식해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의사는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끄떡거렸다고 합니다. 해줄 수 있다고...

평생을 주고도 더 주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사랑하기에 늘 주고 싶어하시고 주십니다. 만약 그 사랑을, 그 은혜를 잊으면 우리는 패역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그 은혜 그것을 감사하는 것이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인생의 키입니다. 여러분도 그 은혜에 대한 감사를 잊지 마시고, 여러분의 자녀에게도 그 감사를 잊지 않도록 가르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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