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

2005.07.05 03:34

김승천 조회 수:3648

                                                  사사기 3장 1 - 11 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와 살게 된지도 이제 꽤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지난 시간 말씀드린 대로 광야에서 고생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다 떠나고, 가나안에 들어와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싸우던 사람들도 대부분 죽었습니다. 자기들의 조상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또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전쟁을 치루어야 했는지, 지금은 별 상관없는 옛 이야기일 뿐이고 또 왜 그토록 죽도록 싸워야 했는지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오히려 답답했습니다. 왜 그렇게 죽이고 죽는 싸움을 했을까? 말로하면 되지 싸우기는 왜 싸워? 그러는 사이에 그들의 사고에는 전쟁과 하나님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힘이 있으면 싸움에서이기는 것이고, 힘이 없으면 지는 것이지... 그래서 군사적 훈련이나 좋은 무기에 의해 전쟁이 좌우된다고 하는 합리적인 생각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생각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갖는 생각의 흐름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생각을 고쳐 주셔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무기나 군사력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달려있다고 하는 것을 알게 해 줌으로 하나님이 누구인가? 를 하나님 자신이 가르쳐 주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오늘 1-2절의 말씀 " 여호와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시려고... " 하셨습니다.

우리는 잠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어떤 명령이 있었는지 살펴보고 계속 사사기의 말씀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신명기 7장 1-4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신 경고입니다. 그런데 그 경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려하셨던 일들을 그들이 행하게 되었습니다. 종종 구약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또 질문하기도 합니다. 왜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엄하고, 잔인한 명령을 하셨는가? 불쌍히 여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왜 그런 명령을 내리시는지 이유가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그들의 흔적을 남기고 서로 왕래하며 혼인하게 되면 결국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돌려놓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떠나게 되면, 결국 거기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실현하는 심판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 작은 집에서 많이 보냈는데, 저희 작은 집은 붓을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때 일하시는 어른들이 가끔 " 개꼬리 3년 묻어 둔다고 황모 안된다 "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붓을 만드는 털로 여우나 쪽제비 털을 사용하는데, 그만큼 귀하고 비쌉니다. 주로 꼬리털을 가지고 만드는데, 개꼬리는 천지에 많지만, 그것으로는 붓을 만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꼬리 3년 묻어 두어도 여우나 쪽제비 털이 되지 않는다는 말로 애초부터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고 고름이 살이 되지는 안는다고 하는 말과 비슷합니다. 고름은 짜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나안에 가혹하게 하는 것 같은 것은, 결국 자기도 망하고 남도 망하게 하는 그들로부터, 자기 자녀를 지키시기 위한 명령이요, 경고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듣지 않았고 또 전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정리해 보면, 전쟁 같은 것은 왜하며, 그리고 전쟁이 하나님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대해서 명령하고 경고한 것을 이제 그들이 기억도 하지 않지만, 설령 그런 명령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별로 지킬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불편해야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비록 원하시는 것이라 해도 그들과 불편한 관계로 나아가고 싶지 않고, 가나안 사람들 역시도 처음에 그들이 자기들이 살고 있는 땅에 들어올 때는 저항도 해보았지만, 결국 더 이상 쫓아낼 수 없게 되자 동화정책을 쓰기로 나서는 것입니다.

별로 경계 없이 자라던 이스라엘의 자녀들과 가나안의 자녀들이 크면서 결혼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좀 서먹하고 그런 결정을 내리는데 어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쌍이 그렇게 결혼하고 나니까 장애가 없어졌습니다. 너도나도, 마치 유행처럼 가나안 사람과 사돈 맺는 것이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이 가장 우려하고 가장 싫어하는 그들의 신을 섬기는 것까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5-6절 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마침내...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며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

예전에 비행기에서 이제 막 개방되기 시작하는 러시아에서 무역을 하는 분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와 이야기를 한 분은 중고 배와 비행기를 사고 파는 사람인데, 일을 하는데 그 나라의 마피아 같은 집단과 손을 잡으면 일이 정확하다고 합니다. 쉽기도 할 뿐 더러, 정부에서 하는 것보다 정확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말하기를 만약 계속 그 마피아들과 거래를 하면 결국에는 그 나라 경찰의 손에 죽든지 마피아의 손에 죽든지 둘 중에 한편에 의해서 꼭 죽음으로 끝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에 경찰이 들이닥치든지, 아니면 살인 청부업자가 들이닥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무너지게 하는 세력은, 처음부터 우리와 거래가 잘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드럽게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이익을 남기게 되면서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너 좋고 나 좋아, 서로가 좋은 것 같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을 좀먹는 가나안 같은 존재가 무엇입니까? 또 반드시 기억하고 마음에 새겨서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경고가 있습니다. 빨간 불이 켜진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가면 어쩌다 하나는 무사히 지나갈 수 있습니다. 어쩌면 두 개 까지도 차가 안 와서 사고가 안 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세 개도 네 개도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미친 사람입니다. 미친 것 별것 아닙니다. 경고를 무시하면 미친 사람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철저히 무시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그것이 나쁜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가나안 사람들과 황금기를 보내고 있었으며 그들의 신을 부지런히 섬겼습니다. 7절에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 하나님은 진노하시며 그들에게 자기가 누구인가를 가르치기로 작정하시고, 메소포다미아의 왕 구산 리사다임을 쓰셨습니다.

메소포다니아의 구산 리사다임은 메포포다미아에서 가나안을 다스리는 총독 격으로 보낸 사람인데,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남쪽으로 쫓겨나서 이를 갈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스라엘이 많이 변한 것을 전해듣고 있었습니다. 그 무서운 장수 여호수아는 죽었고, 그 백성들은 이제 가나안 사람들과 흥청망청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구산 리사다임은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군사들도 훈련되어 있었습니다. 전쟁이 그것의 힘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것의 힘 외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랜 시간 이를 갈며 지내왔기에 그들의 학대는 매우 가혹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싶어했겠지만, 그들도 죽을 지경입니다.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신들에게 구했습니다. 그렇게 멋지게 보이고 대단하게 보이던 바알과 아세라 신에게 구했는데, 그 신은 전혀 감각이 없는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한해 두해 흘러가는데, 그들은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습니다. 저절로 "아이구 하나님" 하는 중에 누군가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애굽의 바로에게서 자기들의 조상을 구원해 내신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역사해 주시면 좋겠다고... 그런 하나님이 자기들에게도 함께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워낙에 강한 압정에 시달리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하나님도 어쩌지 못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우니까 모일때마다 하나님께 도와 달라는 부르짖음이 터지게 되었고, 울었습니다. 8,9절에 "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을 섬겼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하나님께서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셨습니다. 그들이 회개하는 소리였으면 좋겠지만 그렇게까지 되지 않았습니다. 단지 아파서, 너무 고통스러워서 구원해 달라고 애원하는 소리에 하나님은 마음이 동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들이 원하는 그런 구원자가 되기에는 가능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옷니엘이라고 하는 갈렙의 조카되는 사람입니다. 물로 그도 한때는 용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갈렙이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사람에게 자기 딸을 주겠다고 했을 때 용감히 나서서 그 성읍을 취하게 되고, 그래서 당시에 아주 출중하고 아름다운 갈렙의 딸 악사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옛날 이야기이며, 이제는 그도 많이 늙어서 힘이 쇠잔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 옷니엘이 정말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면 벌써 나타나서 자기들을 어떻게 했어야지, 지금까지 그 아픈 고통과 압제 속에 끽소리 못하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구원자로 나서니, 사람들은 여간 실망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옷니엘이 나설 때, 많은 사람들은 콧방귀를 끼었을 것입니다. 늙으면 망령이라 이라 더니 옷니엘이 그런 것 같았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그는 사람들에게 싫어버린바 되었으며,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그리스도와 같이, 전혀 구원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엇에 홀린 듯 자기에게 동조하는 몇 명을 이끌고 구산 리사다임을 잡으러 가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금껏 우국 충정을 가지고 자기 민족을 구해보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그들 중에는 젊고 패기 있고 지혜가 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모두가 시체가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구산 리사다임의 심기는 더욱 불편해 졌고, 더욱 가혹한 학정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옷니엘이 나서는 것을 오히려 자기들을 더욱 답답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일이라 여기면서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구산 리사다임의 진영에서 볼 때도, 옷니엘과 얼마간의 사람들이 자신들에게다가 올 때, 싸움을 하러 온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어설퍼 보였습니다. 변변한 장수가 앞으로 나서는 것 같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무슨 묘략을 쓰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좀 이상하게 생긴 노인네 앞을 구산 리사다임의 병사가 가로막을 때, 손에 잡힌 칼이 번쩍이며 순식간에 그의 목을 잘랐습니다. 그리고는 질풍처럼 가로막은 자를 치면서 나갔습니다. 갑자기 리사다임의 병영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어느덧 옷니엘은 내실로 뛰어들어, 어처구니없어 바라보고 있는 구산 리사다임의 목을 내리쳤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함께 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옷니엘의 창 끝에 구산 리사다임의 목을 매달고 나타난 것입니다. 순식간에 자유가 선포되고, 구원의 기쁨이 흘러 넘쳤습니다. 10절 말씀에 "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긴지라 "

하나님은 그들에게 전쟁이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를 알게 하기 원하셨습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 강원도 전방 어느 시골 교회에 집사님이 한 분 오셨는데, 그 근처에 있는 사단의 사단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단은 해변을 끼고 있는 곳이라 늘 군인들의 사고가 많은 사단으로 일단 그 사단에 배속되면 모두가 한숨을 쉬는 그런 사단이었는데, 이 사단장 집사님은 처음 부임해서 교회 목사님을 찾아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기도를 부탁하고, 자기도 늘 새벽마다 나와서 사병들 아무런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집사님이 근무하는 2년 3개월 동안 단 한 건의 사건도 없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별 2개를 달고 왔다가 별 세 개가되어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돌아하고 다음 사단장이 왔는데, 일주일도 안 되어 대형사고가 터졌다고 합니다.

신문에 보니까 어제도 한국 전방 사단에서 어느 병사가 고참의 언어 폭력에 시달리다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지고 소총으로 쏴서 8명이 죽고 2명이 중상을 입는 대형 사고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소대장은 같이 죽었지만,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은 말할 것도 없고, 사단장, 군단장 혹은 육군 참모총장이나 국방부 장관까지도 사임해야 할지 모릅니다. 사실 연대장이나 사단장은 그 사병 알지도 못합니다. 그냥 자기 집에서 잠 잘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날벼락 맞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평생을 군인의 길에서 살아왔는데, 하루아침에 그냥 옷 벗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전쟁이 여호와께 속한 것이고, 인생이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늘 이것을 기억하기 원하십니다. 반드시 이길 것 같은 싸움도 어처구니없이 지고, 꼭 질 수밖에 없는 것 같은 싸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인생길이 그렇습니다. 어느 때는 자신 있어도 실패합니다. 어느 때는 정말 자신 없고 안될 것 같아도 되고, 성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주관이 주께 있음을 하는 백성들을 보실 때,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불가능해도 이루어지고,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면 아무리 가능해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아는 인생을 보실 때, 하나님은 행복해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옷니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말했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며,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지내왔으며, 하나님은 지금껏 어떻게 역사하셨으며, 우리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워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행복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마지막 절은 " 그 땅이 태평한지 사십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 참 모두가 행복해 하고, 평안해 하는 시간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무기와 군사력의 싸움이 다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 길은 여호와께 속해 있습니다. 머리 좋은 것의 싸움이 아닙니다. 재주 많고 적음의 싸움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높이 드시면 높이 들리 수 있고, 하나님이 버리시면 아무리 높아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들이 자기를 좀더 잘 알고 분명히 알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능력이고 행복입니다. 옷니엘에게 함께 하셨던 하나님, 오늘 부족한 제게도 함께 하시길 원하며, 바로 여러분에게도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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