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 시대의 진주 드보라 I

2005.07.05 03:44

김승천 조회 수:7102

  사사기 4장 1절 - 24절

우리는 오늘, 가장 위대한 사사를 한 사람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사사 중에 가장 위대하다고 알고 있는 사사가 기드온입니다. 그와 더불어 가장 뛰어난 사사로 칭송 받는 사람이 바로 드보라입니다. 그는 사사 시대의 진주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여자였습니다. 그가 어떤 시대의 사람입니까? 여자가 전면에 나서기에 제도적으로나 분위기로나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성경에 위대한 여성들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가 사라가 그렇습니다. 보아스의 부인이 되는 룻이 그렇습니다. 에스더 왕후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은 모두, 여자의 위치에서 여자가 해야 할 일로 자신을 빛낸 분들입니다. 그러나, 드보라는 아닙니다. 그가 키가 얼마나 컸는지, 몸집이 얼만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삶의 그림자가 매우 크고 길게 드리워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미치는 영향력이나 그가 덮는 삶의 그늘이 너무나 컸습니다. 한 남편의 아내로, 수많은 제약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사들은 성경에 단 한 줄을 기록하고 있는 사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사사기 4장의 전체와 그리고 5장에서 드보라의 노래는 현존하는 희브리 문학 중 가장 오래된 표본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말 멋진 여자, 능력 있는 여자를 만나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보너스로 용감하고 현명한 여자, 한 분 더 만나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야엘이라고 하는 야무진 여자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복된 배반을 마치 문지방처럼 넘어서 본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1절에 " 에훗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 이스라엘 백성들도 어지간히 반복해서 하나님을 떠나지만, 하나님 또한 끈질긴 추적의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매번, 너무나 마음 아파하시면서 자기 백성 사랑하는 것을 버리시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째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하나님을 떠났고, 가나안 북부 하솔 지역의 야빈이라고 하는 사람을 왕으로 한 강한 족속이 있었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들에게 넘겼습니다. 야빈에게는 강력한 군대가 있었는데, 그 군대의 장군은 시스라입니다. 야빈의 군대가 강한 것은 그 장수의 용맹스러움도 있지만, 철로 만든 무기를 쓰고 있었다고 하는 것니다. 3절에 "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승이 있어서 이십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 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 철병거 구백승, 오늘날이면 그것이 순전히 고철 덩어리이겠지만, 그때 당시로는 최첨단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냥 보병들이 넓은 벌판에 서로를 다 죽일 때까지 싸우던 시절에 철 병거를 통해 파죽지세로 밀어붙이면 한쪽은 싸워볼 엄두도 안 나는 것입니다. 20년 동안 이스라엘은 꼼짝 못하고, 심한 학대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자리로 몰아가신 것입니다. 세상 그 어느 것도 힘이 안 된다고 생각할 때, 겨우 그때가 돼서야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도록 해주시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에브라임 땅에 이상한 선지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이상하다고 하는 것은 여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하는 것도 별 관심이 없는 시대였는데, 여자라고 하니까 더더욱 이상하고 웃낀 것입니다. 여자에게 기도를 받는 것, 여자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은 한참 모자라거나 무식한 부류로 취급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 마음에 은근히 무시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그가 어떤 문제를 판결하고 해결하는데,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용한 점쟁이라고 해도, 일단 점쟁이라고 하면 용하든지 안 용하든지 저에게는 "니 삶이나 점 처봐라"하는 정도로 무시합니다. 그런데, 그 점쟁이의 점쾌가 신통하다고, 너무 용하다고 믿는 사람은 국회의원이고 탤런트고 누구고, 껌벅 죽게 됩니다. 그 사람들은 절대 무시하지 않습니다.

드보라가 여러 가지 조건으로 보면 무시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는 것은 일단 문제가 있어서 그에게 갔을 때, 너무나 권위 있고, 명쾌하게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그에게 나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드보라의 명성도 쾌 알려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4-5절에 "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

왜 하나님께서 그 시대의 보편적이지 않은 여자 선지자를 세우셨는가? 그가 사람들을 재판했다고 하는 것은 하늘의 지혜가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지혜를 하나님이 왜 그에게 주셨는가? 주시려고 하면 무리 없이 다른 때와 같이 어떤 남정네에게 주어서 그로 하여금 사사의 일을 하게 하시면 될 것이 아닌가? 여러분은 왜 하나님이 드보라를 선지자로 부르셨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그가 그 시대에 누구보다도 기도 많이 하는 여자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하늘의 지혜를 주십니다. 솔로몬이 어떻게 지혜의 왕이 되었습니까? 일천 번제를 쌓고 난 후에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보라는 한 가정의 주부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나라를 위한 일에 나설 수 있게 되었습니까? 틀림없이 그의 깊은 기도가 그곳에 이르게 했을 것입니다.

기도를 처음하면 주로 자기를 위한 기도합니다. 자기 생활, 자기 소망, 자기 꿈, 그러나 조금 더 기도하는 사람들, 가족 위해 기도하고, 교회 위해 기도합니다. 조금 더 기도하면 자기 친구들이나 직장, 지역 사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조금 더 기도하면 민족을 품고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의 깊이가 더하고 간절할수록 기도는 그 범위를 확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그런 말씀하시는 것 들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한국 교회에 이런 목사님, 이런 사역 잘할 수 있는 분, 세워주세요? 아니면 이런 선교사 세워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다가 왜? 다른 사람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하니? 네가 하면 안되겠냐?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자기가 그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드보라가 자기 가족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기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자기 이웃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자기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공평한 판결을 얻지 못해서 억울해 하는 일들을 많이 보면서, 그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정말 지혜로운 자를 세워주셔서 백성들을 잘 판결할 수 있는 사람을 주세요? 그의 기도가 너무나 간절했기에,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드보라 그를 세우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만큼 기도하는 사람, 그만큼 하나님의 지혜로 충만한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퐁뇌프 자매님들 모두 이 시대의 드보라가 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필요로 하십니다. 구조나 환경이 남자들로 판이 짜여 있어서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그 지혜는 많이 기도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죽으나 사나 자기 가족밖에 모르는 사람, 자기라고 하는 울타리 밖에 모르는 사람, 그런 사람은 그냥 욕심만 있으면 됩니다. 지혜가 뭐 때문에 그렇게 필요하겠습니까? 물론 남자들도 드보라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가진 것 없어서, 여건이 좋지 않아서, 많은 재약이 있어서... 이유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마음의 폭이 넓어져야 하고, 긍휼의 세계가 커져야 하고, 강한 능력의 필요함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의 지혜와 능력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드보라는 오래 전부터 북쪽 지방이 야빈 왕에게 극심한 학대를 받고 늘 약탈당하고 있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시간이 벌써 20년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철병거로 무장한 엄청난 세력에 이스라엘이 꼼짝 못하고, 다만 납달리 게데스에서 간혹 게릴라 전 같은 것을 일으켜 야빈을 괴롭게 하는 바락이라고 하는 용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에브라임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납달리와 스불론 자손 만명을 뽑아 다볼 산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스라의 군대를 기손 강으로 오게 하여 패하게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6-7 절 " 드보라가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가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르시기를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으로 가라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스시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

바락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스시라의 군대와 정면으로 맞써 싸워야 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냥 빈틈을 이용해서 공격하고 빠지고, 또 허점을 치고 빠지고 하면서 괴롭혔는데, 정면으로 충돌해서 싸운다고 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이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하지만, 바락은 믿기 어려웠습니다. 바락은 차마 그럴 용기가 잘 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드보라에게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안가면 나도 안가겠다... 그만큼, 드보라를 의지한다 기보다는 오히려 못 미더운 것입니다. 8절에 "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

드보라는 머뭇거리는 바락의 태도를 보면서 한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기 살기로 싸워보겠다고 나서면 좋을텐데, 죽을까봐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이 되는 말을 합니다. 9절입니다. " 가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

바락은 어떻게 뒤로 뺄 수도 없이 드보라와 함게 나서게 되었습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시스라를 죽이고 올테니 두고 보라고 소리질렀을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도 시스라를 죽이면 좋겠지만, 하필이면 저 아줌마가 나서서 저럴까?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뒤를 따라가는 바락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게데스에 이르렀고, 드보라는 빨리 만명의 군사를 뽑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기손강을 향해서 나갔습니다.

바락이 군사 만명을 데리고 다볼산에 올랐습니다. 이런 움직임이 시스라에게 전달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그의 임무는 반란군을 막는 것이었기 때문에 늘 그런 동향에 대해서 민감해 있었습니다. 그는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군사를 모아 그 유명한 철병거를 앞세우고 기손강으로 나왔습니다. 13절 "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병거 구백승과 자기와 함께 있는 온 군사를 이방 하로셋에서 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 "

다볼산에서 기손 강으로 모이는 시스라의 군대를 내려다보고 있던 이스라엘의 만명과 바락은 간담이 서늘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새까맣게 몰려드는 군사와 그들 앞에 당당하게 늘어선 철병거들 때문입니다. 드보라는 두려워하고 있는 바락과 군사들에게 소리쳐 명령을 내립니다. 빨리 내려가서 싸워라,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실 것이다. 14절 "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

주춤 주춤 거리다가 에잇, 죽으면 한번 죽지 두 번 죽냐? 하면서 죽기 살기로 내려갔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15-16 절 "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매,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려졌고 남은 자가 없었더라 "

우리의 믿음이 별게 아닙니다. 끝까지 못하겠다고 버티지만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누가 보아도 전력상 상대가 안됩니다. 그래서 나가서 싸우는 것은 매우 무모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다고 해서 될 문제도 아닙니다. 이미 시스라가 전쟁을 하겠다고 수많은 병사를 거느리고 출전한 이상, 가만있어도 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상황에서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다가 죽자고 결심하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믿음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은 작은 것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싸움에 못나가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싸우다 죽겠다고 하는 각오, 하나님은 거기에 승리를 주십니다.

성도의 신앙적 싸움이라고 하는 것은 늘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상대해서 싸우는 싸움입니다. 지금도... 싸움의 상대가 안 되지만 싸워서 이겼을 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우리가 싸워야 하는 모든 신앙적 전투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객관적 전력의 비교가 안됩니다. 전혀 방어의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이겼습니다. 그리고 그 이김은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이긴 기분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나라를 구하고 민족을 살린 일입니다.

우리 힘으로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일들, 나는 할 수 없는 것 같은 일들, 혹시 그런 일에 부딪혀 있는 분들 없으십니까?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들에게, 바로 그런 사안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십니다. 만약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이 가장 귀가 솔깃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안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모자람으로 넘침을 이기게 하시고, 불안함으로 당당함을 이기게 하시며, 없는 것으로 있는 것을 이기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다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죽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에훗은 살아서 돌아 나오기를 생각하지 않고, 적장을 죽이고 자기도 죽겠다고 하는 결심을 하고 적장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은 그를 살리셨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바락과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전쟁에서의 승리를 하나님이 싸우셨다고 하는 것 외에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이 이루셨다고 하는 것 외에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개인에도, 가정에도, 교회에도 말도 안돼, 말도 안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하면서 놀라워하는, 하나님을 높이는 일들이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매년 수백만 유로씩 장학금을 나눌 수 있는 선한 이웃, 매년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는 교회, 파리에서 천명이 넘게 모이는 교회, 1,2,3부 성가대가 각 백명이 넘는 교회, 학교와 같이 큰 자기 건물을 가진 교회, 그 중에 어떤 것이 쉽겠습니까? 쉬운 것이 있다면 빼버리고, 쉽지 않은 것만 우리의 기도, 우리의 꿈이 되게 하십시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거기 마음이 있으십니다. 그 일을 이루게 해주고 싶어하십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나가는 사람 있으면 하나님 그일 반드시 이루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은 그 시대의 깊은 영성으로 백성들의 삶을 리드하던 여 선지자 드보라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그가 자기 가정 하나 지키는 것으로 머물지 않고, 백성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그 나라를 위경에서 건져내었던 그 동력을 외부에서 찾으면 안됩니다. 그가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하늘의 지혜가 충족한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을 철저히 의뢰하고 있었기에 겁이 없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는 늘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것으로 가능케 하시고,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부끄럽게 하는 능력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형편과 처지가 나쁘고, 불안하고, 힘겨우면 우리는 그만큼 큰 역전의 순간을 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바락의 군대처럼, 자신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큰 승리를 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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