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들이 가득한 교회

2005.09.28 16:26

김승천 조회 수:3837

                                                             사사기 5장 10절 - 18절

한달 만에 다시 사사기로 돌아와서 여러분이 지난 시간의 말씀을 기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드보라와 바락이 시스라를 물리치고, 사사기 5장에서는 드보라의 노래가 기록되어 있는데, 지난 시간에는 드보라의 노래 중에서 즐거이 헌신된 사람들의 찬양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었습니다. 객관적 전력에 의하면 이길 수 없는 싸움, 그 싸움을 드보라가 이겼지만, 결코 드보라가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기신 싸움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즐거이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승리하게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좀더 구체적으로 그 싸움에 참여했던 사람들,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들, 그들을 살펴보면서 이 시대에 세상으로 대변되는 사탄의 세력과 싸움을 해나갈 성도, 그들이 모인 교회, 우리 퐁뇌프 교회가 그런 아름다운 사람으로 가득한 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먼저 10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흰 나귀 탄 자들, 귀한 화문석에 앉은 자들, 길에 행하는 자들아 선파할지어다 활 쏘는 자의 지껄임에서, 멀리 떨어진 물긷는 곳에서도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을 칭술하라... " 여기 흰 나귀 탄 자들이나, 귀한 화문석에 않은 자들이라고 하는 것은 나라에 어른이나 지체가 높은 사람들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길에서 행하는 자들이란 일반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고, 활 쏘는 자라고 하는 것은 군인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물긷는 곳이란 한가한 사람들이거나 자기 일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에 대한 표현입니다. 다시 말하면 높은 사람이든지, 낮은 사람이든지, 멀리 있든지 가까이 있든지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드보라 자신도 자기가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바락도 같은 마음입니다. 그들은 분명 자기의 힘도 아니고, 13절에 바락이 말한 것 같이, 친히 여호와께서 적군의 용사를 치시려고 강림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만방으로 깨지고 부셔지고, 처참하게 패해야 마땅하지만, 또 전력 상 그렇고 체질상 그럴 수밖에 없는 약골들이지만, 그러나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늘 기억하고 찬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긴 것이 아닙니다. 찬송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14절부터, 그 싸움에 자원했던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이 시대의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하는 우리들과 능히 비교되며, 우리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 중에 불리워 질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 가운데 싸움에 나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순수한 에브라임 사람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14절 상반절에 " 에브라임에서 나온 자는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요 " 아말렉에 뿌리가 박힌 자라고 하는 것은, 아말렉 사람으로서 에브라임 사람이 된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전쟁에서 에브라임 남자들이 아말렉 여자를 데리고 와서 살다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장성해 에브라임 사람들이 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그들에게는 아말렉의 피가 흐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구별된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이런 구별이 있지 않았다면 성경에 그 사실을 명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양반 시대의 서자들처럼, 남들도 그렇게 보았고 자신들도 떳떳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거룩한 전쟁에 동참하고 나선 것입니다. 순수한 에브라임 사람들은 무엇하고 있고, 이방인 같은 그들의 나섬이 부각되고 있습니까? 그들은 아마도 상황을 판단하고, 현실을 계산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자부심 강한 사람, 자기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똑똑한 사람 사용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에게 치이고, 고개 숙이고 살아가는 사람, 그러나 마음이 깨끗하고 순수하게 헌신하는 사람, 그들을 통해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일을 성취시키시는데 돈이 없어 돈 있는 사람에게 목을 매고 있지 않으며, 지혜가 부족해서 똑똑한 사람에게 사정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부름에도 분명히 우리가 아말렉에 뿌리 박힌 에브라임 사람들처럼 헌신하지 않으면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사람, 그러리라고는 도저히 상상도 못했던 사람을 들어 쓰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서 옮겨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수많은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거룩한 영적인 전투에 자원하고 나선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가 이룰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넘어서는 엄청난 역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바로 오늘 말씀과 같이 아말렉에 뿌리 박힌 에브라임 사람 같은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베냐민 사람들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동족이 서로 싸운 비극으로 인해 숫자적으로 무척이나 적은 지파입니다. 그렇게 극소수의 사람들 중에 전쟁에 나와서 잘못하면 지파의 존재 자체가 위협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그들이 나왔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민족을 위해 자신들의 장래를 제물로 내 놓았습니다. 충분히 변명이 되고, 이유가 되는 사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서 자신들의 미래를 던진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만 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없으면 결국 지파도 없고, 자기도 살 수 없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자식 사랑하면서 돈으로 자식 잘 키우려고 하는 사람,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신앙의 전투가 치열한 것이 자식을 복되게 하는 일입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 열심을 내고, 그렇게 열심을 내는 자기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탄의 세력과 부단히 싸우는 자, 그가 자식을 복되게 하며 가장 현명하게 키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소망 있는 미래입니다. 자기 살겠다고 신앙의 싸움 뒤로 물러서면 결국 나라 잃고 자기 망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영적인 싸움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마치 베냐민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그 다음 마길에서 사람들이 왔습니다. 요단강 건너편 므낫세 지파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곳에서는 일반 사람들이 온 것이 아니라 지도자들이 왔습니다. 그들이 전쟁에 능한 자들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행정에 더 밝은 지도자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을 보내지 않고 지도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전쟁에 참여하고자 왔던 것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먼저 된 자들의 솔선 수범하는 모습을 마길의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그들은 보내면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구도 그들에게 나서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가지 않으려고 하면 갈 사람 없다고 하면 그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을 건너 먼 곳에 스스로 지도자들이 위험을 무릎 쓰고 헌신해서 나설 때, 하나님이 패배하게 하실 수는 없으셨을 것입니다. 이 시대는 주님의 나라를 위해 사탄과 싸워십시오 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직접 나서서 싸우는 사람이 더 필요한 시대가 분명합니다. 마길의 다스리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먼저 나서고, 솔선수범해서 나서는 신앙의 지도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스불론에서도 왔습니다. 14절 마지막 부분에 " 스불론에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가 내려왔도다 " 대장군의 staff 가 온 것입니다. 어떻게 싸워야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는지? 전략의 명수들, 이긴 경험, 패한 아픔의 노장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 저는 이런 영적인 싸움의 전략가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의 대응이 어떠해야 하는지... 각 분야에 너무나 치열한 공격이 있는데, 교회는 너무 대응을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화와 예술 뿐 아니라 각 분야에 영적인 싸움의 작전을 세울 수 있는 참모진이 많아야 합니다.

한국의 많은 목회자들이 점점 교회의 젊은이들이 이탈하는 현상을 보고,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고들 계신 것 같습니다. 점점 젊은 분들이 애들을 낳지도 않고, 교회가 관심을 끌지도 못하고 해서 다양한 이유로 교회에 어리고 젊은 친구들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교회가 그들을 이끌고 갈 수 있는 작전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자원하는 자들의 힘이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엄청난 힘을 결집시켜줄 참모진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바로 이 시대의 그런 전략가들, 참모진, 스불론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잇사갈 사람들도 동참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5절에 "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 하니 " 했는데, 방백들이란 결국 나라에 가장 지체 높은 자의 자식들, 병역이 면제될 수 있거나 충분히 기피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위험에 앞장서서 나선 것입니다. 드보라와 바락과 함께 하면서 용기를 더했을 것입니다. 힘들고 고독한 지도자의 길을 흔들거나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는 일들과 결정내리기 힘든 일이 있을 때, 곁에서 함께 힘이 되던 사람들, 잇사갈의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 그 발을 쫓아 골짜기로 달려 내려갔다" 고 했습니다. 높은 곳에도 함께 오를 뿐 아니라 골짜기에도 함께 내려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지도자로 엄청나 용기와 힘이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식구들에게서 때때로 큰 힘과 용기를 느낍니다. 성도와 성도간에도 어디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만나든지, 흔들리지 않고, 용기 있게 신앙의 싸움을 싸워갈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드보라와 바락이 나서고, 하나님이 이기신 싸움, 그러나 거기에는 이렇게 자원해서 나섰던 많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시대 앞에, 우리가 싸워야 하는 영적인 싸움 앞에 바로 이런 사람들이 가득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열등감과 천대에 시달리는 열악하고 보잘 것 없는 환경에서도 나섰던 아말렉의 뿌리 박힌 에브라임 사람처럼, 자기의 미래가 풍전 등화와 같아도 더 큰 대의를 위해서 과감하게 나섰던 베냐민 사람들처럼, 자기의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내 놓으며 스스로 나섰던 마길의 사람들처럼, 어쩌면 가장 늙은 사람들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가장 앞장서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운 스불론 사람들처럼, 또 납달리 사람들처럼, 그리고 지도자의 곁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힘이 되 주었던 잇사갈 사람들처럼, 우리도 각자의 다양한 모양 가운데, 거룩한 영적인 전투를 위해서 함께 모인, 기쁘게 헌신된 사람들도 이 교회에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성경에는 이들말고 거룩한 싸움에 나서지 않은 사람들도 섭섭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르우벤 사람들, 그들은 싸우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냥 목동들의 피리소리나 듣고 있기 원하는 한가로운 삶을 원했던 사람들입니다. 시대를 분별함이 뒤진 사람들, 현실의 안주를 깨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길르앗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먼곳에 이르러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어야 하는 일,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남의 일같이 여기고 참여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단 지파 사람들도 자신들의 무역 현장에서 달려오지 못했습니다. 먹고사는 것이 바쁘다고 하는 핑계입니다. 이 시대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심을 내지 못하는 신앙 생활에 이 단 지파 사람들의 핑계를 갖다 대는지 모릅니다. 아셀지파 사람들도, 피곤하다는 핑계로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부르실 때, 자원해서 나서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여러 모양으로 뒤로 물러서며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천사장의 나팔소리가 들려지기 전에 영적인 싸움을 위해서 부르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때입니다. 만약 그 나팔 소리가 나는 시간은 이미 늦는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때때로 모험도 하고 위험도 감수하면서, 영적인 싸움을 위해서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고, 늘 때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웅쿠리고 있어야 되겠습니까? 환경, 여건, 내가 즐기고 있는 것 좀더 영유하다가 좀더 있다가, 좀더 있다가... 영적인 싸움에서 지면 모든 것을 지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그것은 싸움에 나선자만 죽는 일이 아니고, 모두가 죽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루우벤 사람들, 길르앗 사람들, 단지파 사람들, 아셀지파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아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써주소서... 하는 에브라임의 서자들 되십시다. 베냐민사람들 되십시다. 마길의 지도자들 되십시다. 스불론의 참모진이 되십시다. 잇사갈의 방백들이 되십시다. 그러면 우리의 영적인 싸움은 승리합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그들이 그렇게 자원했다고, 즐거이 헌신했다고 그들이 이기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보면 하나님이 안 이기실 수 없습니다. 그 아름다운 사람들이 패하도록 하나님이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퐁뇌프 교회 성도 여러분 !
사사기의 전체적인 내용의 핵심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 즉 영웅으로 부름받은 자로서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 시대의 영적인 싸움의 장수로 부르셨습니다. 괜히 사랑해야 하는 사람과 붙어서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좀먹고, 주의 진리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영적인 세력과 담대히 맞서 싸우는 부름 받은 자의 용감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내고, 신앙적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얼마나 바쁘던지, 얼마나 정신 없던지, 얼마나 가난하던지, 급박하던지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께 부름 받기에 가장 적당한 자리이고, 나서야 하는 자리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부름에 귀를 막고 있다고 우리도 그러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부름에 자원해서 나서는 아름다운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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