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살롬

2005.09.28 16:39

김승천 조회 수:4850

                                                   사사기 6장 1 - 24절

엊그제 저녁에 집에 들어가다가 본 달이 유난히 밝고 커 보이더니 음력 팔월 한가위, 중추절이기 때문이었던 같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서 즐겁게 보낼 즈음에 공부한다고 외국에 나와서 홀로 보내는 추석이 쓸쓸한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마침 주일을 맞아 예배 가운데 가족을 기억하며 기도하시고, 그런 가족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 되면 좋겠습니다. 한가위를 맞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여호와 살롬' 평강의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남들이 보지 않도록 포도주 즙을 받아내는 웅덩이 아래 내려가서 밀을 타작하는 것입니다. 티끌과 먼지를 풀풀 날리며 신명나게 해야 하는 타작을 웅덩이 속에서 허리를 굽히고 하려니 여간 답답하고 심란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아야 하겠기에, 아버지 요아스가 하다가 힘들면 좀 쉬고 아들 기드온이 하고, 기드온이 하다가 힘들면 쉬고 요아스가 하면서 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타작 할 것도 별로 신통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오랜 시간 약탈이 있었기 때문에 추수 때가 되었지만, 풍요로울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미처 추수 때가 되기도 전에 밀을 잘라서 감추었던 것을 내다가 웅덩이에서 추수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기쁨과 즐거움의 날을 불안하고 심란하게, 그리고 매우 슬프고 고단하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평강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지난번까지 들은 말씀처럼, 여선지 드보라가 하솔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내쫒고 이스라엘의 자유를 회복케 하신 하나님을 노래하는 드보라의 노래를 들었었습니다. 그리고 5장 끝에 보면 " 그 땅이 사십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6장으로 들어서면서 그 태평시대가 또 한번의 영적인 타락으로 이어지고, 이 네 번째의 영적 타락기는 또 다시 네 번째의 외압에 시달리게 되는 형편을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미디안을 인하여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으며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

미디안 사람이나 아말렉 사람들은 모두 유목민들입니다.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다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씨를 뿌려놓았다가 추수할 때가 되면 어디선가 느닷없이 나타나서 곡식을 약탈해 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메뚜기 때 같았다고 합니다. 하늘을 쌔 까맣게 뒤덮는 메뚜기떼, 그 메뚜기 떼가 한번 쓸고 지나가면 곡이 남아 있는게 없는데, 그들이 그러했습니다. 뒤에 보면 그들 중에 칼을 든 자가 삼십만 오천명이라고 했으니까 적어도 수십만이 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괴로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그제야 하나님을 기억하게 됩니다. 마치 어떤 싸이클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태평성대가 되면, 영적인 타락이 오고 그래서 외세의 압제에 놓이게 되고, 그 외세의 압제가 극심하면 하나님께 부르짖고, 그래서 하나님이 구원해 태평성대를 열어주면 또다시 하나님을 배반하고... 주기적으로 이런 반복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지금 외세의 압제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죽지 못해 사는 것 같은 시간을 7년째 보내고 있습니다. 살아갈 여력이 남아 있지 않은 비참하고, 불쌍한 평강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드온이 아버지와 힘든 가운데서도 잔뜩 긴장하며 타작을 하고 있는데, 난데 없이 위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 남들에게 안 들키려고 웅덩이에 쪼그리고 타작을 하던 기드온이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정신을 차려 미디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에도, 도무지 자기가 들은 말이 맞지 않는 것을 본능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 큰 용사는 무슨 큰 용사 " 큰 용사가 이렇게 웅덩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남이 볼까 두려워 떨며 타작을 하고 있습니까? 이게 큰 용사입니까? 그리고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다고 했는데,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이렇게 내버려 둘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입니까? 기드온은 거칠게 대항하고 싶은 심정이 속에서 치고 올라왔습니다. 12절입니다.

"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

기드온은 아마도 더 심하게 자신의 성질을 나타내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 자기에게 말하는 분에게 압도당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말하기를 " 내가 너를 보내겠으니 네가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는 것입니다. 그의 음성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큰 권위를 느꼈고,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자신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 주님 제가 이스라엘을 구원하다니요, 먼저 우리 집안이 그렇게 큰일을 할 집안이 아닙니다. 아시겠지만, 우리는 모든 지파들 가운데 쇠약한 므낫세 지파가 아닙니까? 게다가 그 약한 지파 중에서도 가장 별 볼일 없는 집안이 바로 우리 집안입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도 가장 작은 자입니다. 아마도 사람을 잘 못 찾으신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것은 겸손해 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철저하게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아브라함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고, 베드로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났을 때, 자신이 죄인이라고 하는 것을,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을, 주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라고 하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이런 고백 있으셨습니까?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얼마나 쓸모 없는 존재인지, 얼마나 별 볼일 없는 존재인지가 적나라하게 생각되신 적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을 만난 자녀의 흔적일 수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는, 자신의 몰골을 인정하는 것이 있는 사람이 주를 만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말하고 있는데, 기드온은 자신을 전혀 그렇게 보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은 너무나 작다고 하는 것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스스로 하는 평가보다 하나님이 더 높이 평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소중한 존재로 보시고 계시는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은 이 세상을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는 큰 힘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로마서 8장 31절에 "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3절 "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 34 " 누가 정죄하리요 " 39절에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 여러분들이 바로 그런 분들입니다. 식언하지 않으시고, 실언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기드온에게 네가 가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하셨다면, 우리에게 가서 세상을 구원하라고 하신 것이 다르다면 다른 것뿐입니다.

제가 새로운 해를 시작하면서 시행하고 싶은 계획이 있습니다. 가서 세상을 구원하라고 하는 명령을 받들어서 총력 전도를 하는 기간을 갖는 것입니다. 전도라고 하는 것이 항상 해야 하는 것이지 특별한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항상 하고, 특별한 때를 정해서 더 열심히 하고... 해서 우리 교회가 창립 10주년을 맞는 내년 1월 15일까지 10월 2일부터 16주 동안 여리고 함락 작전처럼, 총력전도 기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10주년 기념 예배 때, 하나님 앞에 열매로 드리며, 파리의 모든 교인들인 모인 자리에서 우리 교회 처음으로 표창을 하겠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개근상을 못타거나 우등상을 못타서 한이 되시는 분들, 괜찮습니다. 그것 못 타도... 만약 교회에서 전도 상 못 탄다면 그것은 정말 한스러운 일입니다. 다음주에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지만, 점수제로 하려고 하는데, 무조건 어떤 사람을 주일 예배에 모시고 나오시면 5점, 만약 그 분이 교회에 등록하면 20점, 그렇게 해서 16주 동안 200점을 넘게 해서 1등 하시는 분이 계시면, 한국에 다녀오실 수 있도록 비행기 표를 시상하겠습니다. 교회에 물량 주의가 범람하는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세상에 도랑 치고 가제잡고, 마당 쓸고 돈 줍는다는 말이 있는데, 전도하고 상 받는 것, 한 영혼을 구원하는데 비행기표 100장이 문제이겠습니까? 그 한 영혼이 귀한 것을 어떻게 값으로 환산하겠습니까? 아마도 그렇게 해서 전도가 되고, 구원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전도의 큰상은 하늘에서 더 말할 수 없는 큰 것으로 준비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계획을 하면서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열심히 전도해서 데려다 놓으면 무슨 소용 있는가? 뒤로 다 나가는데...  우리 교회의 가장 취약점, 뒷문이 열려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 교회 프로그램 중에 뒷문을 막아라 라는 것이 있는데, 정말 한번 교육을 갔다와야 하지 않을까 집을 정도로, 뒷문이 앞문보다 넓은 것 같은 것이 고민입니다. 아무리 못나가게 막아도, 또 교회가 모두 좋다고 해도 나가는 사람 있습니다. 다 막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교회가 부흥하려면 들어오는 사람보다 나가는 사람이 적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1차 적으로 목사의 책임이기도 하겠지만, 먼저 믿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교회를 수평이동하기 위해서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것도 마음 아프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만약 다시는 교회를 안 다니기로 결심하고 떠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얼마나 끔직한 일이겠습니까?

우리 좀더 세상을 구원하는 구원의 그 물망을 좀더 촘촘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주간에 전도사님 두 분이 사임을 표명하셨습니다. 본인들이 교회를 잘 섬기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언제 어디에서든지, 잘하고 만족하는 순간에 떠나도록 해야 한다고, 무엇이 부족한가를 생각해서 뚫고 나가야지, 피하게 되면 평생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전도사님들만이 아니라, 저도 그렇고 우리 모두 한번 겸손하게 정말 교회를 제대로 섬기고 있는지 돌아보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기드온이 자기는 작은 자라고 할 때, 하나님은 큰 자로 불러주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큰 일을 맡겨주신 것처럼, 우리는 보잘 것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고 스스로 깨달을 때, 교회를 새롭게 하고,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맡기실 것을 믿습니다.

기드온이 내가 어떻게,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겠는가?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16절에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희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느 순간에서든지 "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 하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내가 어떤 약하고 부족한 존재인가? 하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어떤 상황이 하나님이 함게 하시는데 안되겠으며, 누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대적이 되겠습니까?

기드온은 그게 정말이시냐? 고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의 사자 시라면, 정말 자기에게 그런 은총을 내리시는 것이 분명하다면 자기가 예물을 드려서 그 증거를 확실히 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하고, 달려가서 어린 염소를 잡고 무교병전을 만들고 고기와 국을 가지고 왔습니다. 주의 사자는 반석 위에 쏟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했습니다. 주의 사자가 지팡이를 그 끝에 댈 때, 불이 붙었고 예물을 태웠습니다. 하나님이 흠향하신 것입니다.

기드온은 자기가 정말 하나님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다고, 그러면 죽는다고 알고 있었던 기드온은 무섭고 불안해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 이러면 죽을 것 같고, 저러면 안될 것 같아서 불안한 일들 앞에 있는 여러분, 주님이 오늘 말씀하십니다. "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 이 귀한 축복의 말씀을 붙드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드온은 거기에 여호와의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살롬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24절 "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난 것 이외에 아무것도 상황은 변화된 게 없습니다. 괴롭히던 사람들이 물러간 것도 아닙니다. 포도주 틀 밖으로 나와서 타작을 해도 될 수 있게 된 것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외형적으로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답답하고, 심란하고, 괴로운 상황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분명 달라졌습니다. 그는 더 이상, 답답하지 않았습니다. 심란하지도 않았습니다. 용기도 있었습니다. 소망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단을 쌓고 " 여호와 살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평강이 보장 된 것입니다. 여호와 살롬은 어떤 일이 완성된 이후에 느긋해지는 마음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오직 신앙으로 담대함을 갖는 것, 거기에 하나님의 평강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여러분에게도 " 여호와의 살롬 "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모여서 문을 걸어 잠그고,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주님 그들 가운데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하셨습니다. 살롬의 주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날들이 불안하고, 무섭고, 두려울 수 있습니다. 죽을 것 같을 수도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 만이 우리 가운데, 우리의 심령에 평강을 선포하실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이 쌓는 이 예배가 기드온이 쌓았던 제단과 같이, 여호와 살롬의 제단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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